고향에 걸려있는 영유시(詠柚詩)에서 국민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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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걸려있는 영유시(詠柚詩)에서 국민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보는 눈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1.31 17:28
  • 호수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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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24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칼럼니스트

이제 지난 글에서 거론한 영유시(詠柚詩) 20수를 소개할 차례다.
`동창이 밝았느냐`의 남해관련설을 좀 더 돕기 위해서다. 이 영유시는 오래전부터 남해의 특산물로 350여 년 전 남해유자에 얽힌 정보와 그 당시 남해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상세하게 알 수 있음은 물론, 다른 지방의 특산물에 대한 농민의 애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영유시 20수는 한시(漢詩) 칠언율시(七言律詩)로 되어 있다. 20수를 모두 소개함은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남해군지(2018년도 발간)에 올려진 20수 중 두 수만 2회에 걸쳐 예시로 올려본다.

세속에서 꿀에 과일과 열매를 담근 것을 정과(正科)라고 칭한다.
곡포보(曲浦堡)에 들어가서 객사의 뜰 앞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다
入曲浦保 見客舍庭前在樹者 

曲浦城邊去復遲(곡포성변거부지)  곡포의 성 가를 다시 더디게 걸어가니
層枝欣見飽霜皮(층지흔견포상피)  층층 가지에 서리 맞은 노란 껍질을 보기 위해서라오
金鱗鎖甲爭寒色(금린쇄갑쟁한색)  금비늘에 갑옷을 입으니 차가운 빛을 다투고
玉帳佳人妬馥肌(옥장가인투복기)  옥장의 가인 향기로운 살을 시샘하네
桃已讓多寧殺士(도이양다영실사)  복숭아가 많음을 사양하니 어찌 용사를 죽이랴
梅還羞有不欺師(매환수유불기사)  매화가 있음을 도리어 부끄러워하니 스승을 속이지 않네
能敎樹下無行迹(능교수하무행적)  군사들에게 나무 아래에 다닌 흔적이 없게 하였으니
始識將軍號令時(시식장군호령시)  장군의 호령이 얼마나 엄한지 알겠노라.

남해의 특산물인 유자(柚子)는 늦가을을 넘어 초겨울에 그 황금빛은 더욱 찬란해진다. 늦가을 서리를 맞아야 비로소 제 맛과 향기가 나는 유자로 익는다. 기후가 온화한 우리 고향 남해는 유자를 따지 않고 겨울에 그냥 두어도 봄까지 노랗게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다음 회에는 `동창이 밝았느냐`의 시조를 단순히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목가적인 시조라거나 독농, 권농의 시조로만 평가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하리라고 보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칠언율시를 연유문과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향의 특산물 유자농사가 세월의 변화와 함께 많이 퇴색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필자가 고향에 몸담아 있을 땐 유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큰 유자나무 하나면 자식 한 명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하여 `대학나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 만큼 수익이 높았으며 이 특산물에 대한 우리 고향 사람들의 애정도 각별했다.
그런데 어느 해 시제 때 삼동면 어느 산록을 오르다가 쓸쓸한 사양길 유자농사의 현장을 보고 말았다. 수백 그루의 유자나무가 칡넝쿨에 휘감겨 거의 고사되었고 달려있는 유자는 탱자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돌보지 않았음이 역력하였다. 노동력이 부족한데다 환금작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향 친지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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