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목가(牧歌)로만 보는가?
상태바
이래도 목가(牧歌)로만 보는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2.10 14:36
  • 호수 6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고향, 나의 삶 25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동창이 밝았느냐`의 시조를 단순히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목가적인 시조라거나 독농, 권농의 시조로만 평가하는 것은 시정돼야 하리라고 보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다음 칠언율시를 연유문과 함께 살펴볼 차례다.

 약천 남구만의 한시를 그 연유문과 함께 국문으로 풀어서 제공한 자료는 2010년에 발간한 남해군지 상권, 313쪽을 인용하였다.  
 
 룗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서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유자의 누런빛이 숲에 찬란하여 바라보면 구름비단과 같았는데, 근래에 마을 백성 중에 유자나무가 있는 집이 있으면 관청에서 장부를 만들어 등재하고는, 가을철 유자가 익을 때에 아전을 보내어 나무마다 숫자를 세어 두었다가 거두어 갔다. 백성들은 이미 아전에게 바치는 비용이 많고 또 관청에 바치는 수고로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혹 숫자를 세어 간 뒤에 바람으로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 주인이 다른 곳에서 사다가 더 보태어서 그 숫자를 채워야 했다. 그러므로 관리와 품관(品官)으로서 다소 세력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하호(下戶)와 백성들은 모두 유자나무 뿌리에 불을 놓고 나무그루를 베어서 그 폐단을 없앴다. 이 때문에 유자나무를 심는 집이 예전에 비하여 십분의 칠팔할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서글퍼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미(子美)의 시에 `고을 백성들이 소중한 밀감을 중하게 여기지 않음은, 호리의 침해에 핍박받기 때문이라오. (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백성의 윗사람 된 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으므로, 인하여 시를 지어 홀로 울었다.룘
 
 聞土人言 數十年前村家柚樹 處處成林 每於秋冬之齋 黃色耀林望如雲錦 邇問村民有柚樹者 自官成籍 秋熟時有吏逐樹 點數而收之 民旣多供吏之費 且有納官之勞 至感點數後有因風搖落者 則不免他買而益之 以充其數 故除官吏品官稍有力勢者外 凡下戶小民則皆燒根斫株 以絶其弊 以此鍾柚家比前殆減十之七八云 余聞而傷之 此正子美詩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者也 慾以聞於處民上者而不可  因成獨謠
 
 千奴栽得十年遲(천노재득십년지) 천 명의 종이 십년 걸려 가꾸었는데
 何事燒根且斫皮(하사소근차작피) 무슨 일로 뿌리에 불 놓고 또 껍질에 도끼질 하는가
 不獨茶綱招邑怨(불독다강초읍원) 다강(茶綱)만 고을의 원망을 부르는 것이 아니니
 從來橘稅民肌(종래귤세할민기) 예로부터 귤의 세금 백성들 살을 베어 갔네
 殘似遇猜桃女(최잔사우시도녀) 꺾이고 쇠잔함은 봉숭아를 시기하는 여자 만난 듯하고
 荒廢眞成養棘師(황폐진성양극사) 황폐함은 참으로 가시나무를 기르는 원예사가 되었구나
 我聽此言心惻惻(아청차언심측측) 나는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몹시 서글퍼지니
 風淳物阜在何時(풍순물부재하시) 풍속이 순박하고 물건이 풍성함 어느 때에나 기대할꼬?
 
 구구절절 유자로 인한 혈세로 농민의 어려운 삶을 표현하고 있는 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천은 결코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만을 노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