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로 그리는 남해이야기… 화가 하미경의 남해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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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그리는 남해이야기… 화가 하미경의 남해사랑법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02.20 14:43
  • 호수 6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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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읍·면에 마을이야기 담
벽화 작업 7년째
삼동면 봉화마을에 작업실
미술 아카데미 만드는 게 꿈
하미경 작가가 1년 반째 그리고 있는 설천면 정태마을 벽화 일부.
하미경 작가가 1년 반째 그리고 있는 설천면 정태마을 벽화 일부.
설천 문항마을 도로변 소 모는 아버지.
설천 문항마을 도로변 소 모는 아버지.

 설천면 정태마을과 충렬사로 가는 해안도로변을 지나게 되면 푸른 벽에서 아홉 마리의 백마가 달려나오고 황조롱이가 날아오를 것 같은 벽화를 볼 수 있다. 

 갈라진 파벽에 그려서 마치 모자이크화 같다. 무슨 벽화일까? "설천면에 9명의 박사가 배출됐다 해서 아홉 마리 백마로 표현해보았고요. 황조롱이는 보통 매사냥할 때 이용됐는데 전쟁 당시 연을 띄울 수 없을 때 전투신호와 연락을 위해서도 날렸대요." 지금 1년 반 동안 이 벽화를 그리고 있는 `봉화 하 작가`의 말이다. 그가 누구냐고?
 
미술가 부부, 남해에 터 잡다
 봉화 하 작가는 7년 전 삼동 봉화마을에 남편 이승모 조각가와 함께 귀촌한 서양화가 하미경(얼굴사진) 씨다. 남해에 반해 남해로 살러 들어온 두 사람은 봉화마을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운영하는 `커피 아티스트`는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픈 스튜디오형 카페지만 처음엔 미술 작업실로만 쓸 요량이었다. 

 "폐가처럼 비워진 봉화 방앗간 터를 5년 만에 알게 됐어요. 들여다보니 마당이 넓더군요. 이곳을 작업실로 쓰겠다고 주인에게 부탁했더니 수락하시더군요. 석 달 열흘을 청소하고 정리해서 작업 공간으로 만들었지요." 그런데 이곳이 독일마을 가는 길목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 커피를 달라더란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카페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공짜 커피를 마시니 미안했는지 커피 값을 두고 가더군요. 작업실 겸 카페는 그렇게 시작됐지요." 커피 값은 한쪽에 놓인 빨간통에 마음대로 넣는다. 손님들은 돈만 넣는 것이 아니라 감사쪽지나 사연을 적어 넣는데 그 이야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남해를 벽화로 그리다
 다시 벽화 얘기로 돌아가면, 하 작가는 남해에 들어와서 벽화를 7년째 그리고 있다. 고현, 서면, 창선 3지역을 뺀 남해 읍·면에 크고 작은 그의 벽화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읍 사무소 옆, 제일고와 남해대학 사잇길, 미조-상주간 해안도로, 상주해수욕장, 삼동 양화금·봉화·동천·물건 마을, 이동 초곡마을, 남면 항도마을, 설천 문항·정태 마을 등이 그곳이다. "벽화는 공공미술이므로 허락이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낙서죠. 또 내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을 더 돋보이게 하고 알려야 해요. 제가 참고하는 자료는 면지입니다. 또 주민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주민들이 좋아해야 하니까요." 

 설천 문항마을 해안도로변에는 3·1운동과 얽힌 역사적 사실과 충렬사, 거북선, 벚꽃, 참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 꽃과 나비도 있지만 대국산성에서 나무해서 소 몰고 가는 아버지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귀촌인들의 전원주택이 보이고 자전거 트래킹 모습도 있다.

 하 작가는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살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나면 그림도 예사로 보이지 않고 의미 부여도 하게 되죠. 그러면 그 장소를 찾은 이들에게 추억 한 페이지를 선사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제를 잡고 나면 먼저 벽에 밑색을 칠하고 원색을 올린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한다. 마지막으로 3번의 코팅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벽화라고 페인팅만 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과정을 똑같이 거친다.

 미조 천하마을에서 상주 금포마을까지 해안도로 1킬로미터 벽화 그릴 때가 가장 힘들었고 거기 버금가게 힘든 작업이 설천이다.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다. 남편 이승모 작가와 함께 해 나간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바람일 뿐이다.

 "아직 안 한 세 개 면까지 작업을 하고 나면 더는 안 하려고요. 다양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나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한 페이지일 뿐이죠." 그의 남해사랑은 이런 방식이다. 
 
단 한 명이라도 제자 키우고파
 그동안 개인전을 비롯해 국제교류전, 국내외 전시회 등을 해온 하미경 작가는 왕성하게 그림을 그려왔고 전업화가로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작년만 해도 인도 첸나이와 두바이에서 해외전시회 두 차례, 한중문화교류전, 국내 전시회 등을 계속 가져왔다. 그런 그가 노년을 남해서 보내며 꼭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의 삶의 마지막 목표는 바로 미술 아카데미다. 어린 시절 종가집 맏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갈급하게 그림을 하다 보니 열악한 남해의 문화예술 환경에서 그림 그리고 싶은 누군가가 그를 찾아온다면 언제든 두팔 벌려 환영할 생각이다. 

 "지금 저는 작품 생각과 아카데미 생각만 해요. 그림 배우고픈 이가 단 한 명이라도 고개 넘어 찾아온다면 저는 라면 끓여 먹이며 가르쳐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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