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국회의원 선거후보 인터뷰 1 | 더불어민주당 황인성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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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국회의원 선거후보 인터뷰 1 | 더불어민주당 황인성 후보
  • 한중봉 기자
  • 승인 2020.03.16 11:25
  • 호수 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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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에서 쌓은 경험과 능력, 인맥 이제 지역위해 쓰고 싶다"
본지가 지난 8일 창선 부윤에 위치한 카페 `꼬빠테스`에서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황인성 후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지가 지난 8일 창선 부윤에 위치한 카페 `꼬빠테스`에서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황인성 후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5일 황인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후보로 정했고, 황 후보는 당선 고지를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난 5일 이태용 여의도연구소 부원장,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하영제 전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을 경선후보로 정하고 다음 주 안으로 최종 후보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34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본지는 먼저 총선후보로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황인성 후보와의 인터뷰를 지난 8일 창선 부윤에 위치한 카페 `꼬빠테스`에서 진행했다. 미래통합당 등 다른 정당 후보와의 인터뷰는 최종 후보가 정해지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먼저 남해군민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십니까? 4·15총선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황인성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걱정 많으시죠. 특히 장사하시는 분들, 자영업 하시는 분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추경을 편성해서 지원을 할 예정이고, 국민 모두가 단합된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씀 드립니다.

예비후보 공보물에서 사천읍시장 중앙식당 국밥집 맏아들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사천읍 평화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문을 나서면 사천시장이 보였고, 반대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산성공원이었습니다. 시장에서 놀다 지겨워지면 친구들과 어울려 산성으로 달려갔습니다. 선친은 읍사무소 호적계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자식 다섯을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여기저기 돈을 구해 살던 집을 개조하고 국밥집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의 사천읍시장 자리인데, 지금도 다른 분이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만나 어머니 이름을 대면 기억하고 반겨주시는 분들이 아직 많이 계십니다.

청년과 중년 시기에는 민주화운동에 주력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 이 시기를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도 궁금합니다 = 내게 대단한 철학이나 이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학생 때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친구에게 대결을 신청했었습니다. 주먹 한번 내밀어보지 못하고 싸움에 지긴 했지만,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화려한 서울의 이면에 있는 도시빈민들을 보고는 연민의 감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들의 빈곤과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기독교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고문도 당하고 구속도 여러 차례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행동들이 내겐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삶이 이끄는 대로 뚜벅뚜벅 걸어왔고, 다행히 그 길은 승리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상은 정치적으로 많이 민주화되었고,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과 부정의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저는 젊은 시절 해왔던 그대로 또 그 길 위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했으며, 이러한 활동과 국회의원과의 연관성을 언급한다면 =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수석비서관이 문재인 대통령이었으니까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동시에 같은 곳에서 일을 했던 셈이죠. 그러다가 문재인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했습니다. 이때 주로 했던 일이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이를 각 수석비서관과의 협의를 통해 정책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었지요. 공공갈등도 해결해야 할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부안방폐장 문제, 사패산터널 문제 등이 당시 주요한 공공갈등이었고 이걸 슬기롭게 대처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게 입법활동이 주된 임무라고는 하지만, 결국 민의를 제대로 듣고 반영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국회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저는 그때 이미 다 배우고 몸에 익혔던 셈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안타깝게 서거하시고, 저는 시민사회로 다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시면서 지난해 6월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결정자체가 늦은 것으로 압니다. 뒤늦게 출마를 하겠다고 결심한 동기가 무엇인지 = 저는 공직을 마치고 난 뒤 모친이 계시는 고향에서 여생을 살려고 내려왔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릴 적 친구들도 만나고 고향산천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서울생활과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며 활력을 갖고 뭔가 해보겠다는 생동감이 없었습니다. 사천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도시 같다고나 할까, 도시가 늙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주민들의 평균연령 때문만은 아닙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삶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물론 고등학교는 진주로 통학을 했지만, 사천이 키워서 저를 서울로 보내주었는데, 이제는 고향을 위해 제가 받았던 혜택을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쌓은 경험과 능력, 폭넓은 인맥을 지역을 위해 써야 되겠다,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성장시기와 중학교까지는 사천에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주로 서울에서 생활과 활동을 한 것으로 압니다. 사천뿐만 아니라 남해와 하동의 지역사정을 잘 모른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이곳에서 줄곧 살았던 분들에 비한다면 당연히 지역 사정을 세세히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이 청와대나 민주평통에서 일할 때 유사한 사례를 접해 보거나 논의해 본 것이라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웬만한 지역의 현안들은 파악했고, 남해와 하동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해를 더 자주 찾고 주민들을 더 자주 만날 것입니다. 게다가 남해군수님이 같은 당 소속이라 지역 현안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긴밀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앙에서 통하는 힘있는 후보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근거를 제시한다면 = 작년 11월, 제 자서전 「황인성의 소명」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저의 중앙인맥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삼천포체육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드물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도지사, 박종훈 교육감, 원혜영, 우상호, 송영길, 김영춘 국회의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모두들 놀랐다고 합니다.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11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기자회견을 한 뒤, 1주일 뒤 사천 KAI에서 집권당의 현장최고위원회의가 개최된 것도 처음입니다. 이 자리에서 저를 더불어민주당 항공우주산업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중앙당이 저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는 함께 일했고, 여당 대표와는 친구이자 오랜 동지이고, 국회와 청와대에 저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동지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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