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오랑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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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오랑캐꽃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3.30 12:14
  • 호수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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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재본지 칼럼니스트
장현재
본지 칼럼니스트

 좁은 정원에 하얀 제비꽃이 피었다. 남산제비꽃이다.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주변 길가나 산야지, 논둑, 묵정밭에서 볼 수 있는 민들레와 같은 앉은뱅이 들꽃이다. 이 남산 제비꽃은 장모님께서 몸져누우시기 전 약초장사를 하면서 캐어 갈무리해 놓은 것인데 다른 물건에 휩싸여 발아해 봄마다 춘란꽃과 함께 피어난다.

 제비꽃은 제비가 오는 삼짇날 전후 피어서 제비꽃이라 했으며 일명 씨름꽃, 오랑캐꽃이라고 한다. 씨름꽃이라는 것은 두 개의 꽃을 서로 얽어 잡아당기는 놀이에서 장수꽃, 씨름꽃이라 불렸다. 그리고 오랑캐꽃은 보릿고개라 불리는 춘궁기 제비꽃이 필 무렵 옛날 북쪽의 오랑캐들이 양식을 구하러 자주 쳐들어올 때 피는 꽃에서 유래됐다 한다. 이외에도 병아리처럼 귀엽고 앙증맞다고 병아리 꽃, 어린잎을 무쳐 먹는다고 해서 외나물꽃, 땅바닥에 앉아서 핀다고 앉은뱅이 꽃,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고 반지꽃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여러 이름 중에 오랑캐꽃이란 이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이 담긴 이름으로 시선을 끈다. 생김새에 있어 꽃의 기부에서 뒤로 길게 나온 부리의 모습이 오랑캐의 머리채와 같다는 뜻에서 이른 봄에 어디에서나 어떤 땅에서도 거친 오랑캐와 같이 야생으로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섬뜩한 오랑캐꽃이다. 한편 서양에서는 제비꽃을 장미와 백합과 더불어 성모에게 바치는 꽃으로도 썼다. 이는 제비꽃의 색깔이 성모 마리아의 옷 색깔과 같기 때문이었다.

 제비꽃에 담긴 슬픈 이야기를 알아본다. 그리스에 아티스라는 양치기가 있었다. 아티스는 이아라는 소녀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의 사랑을 못마땅하게 보는 신이 있었다. 바로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아티스는 아프로디테가 아끼는 소년이었다. 이 모습을 본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신 에로스를 불러 큐피드의 화살을 이아의 가슴에 쏘아 사랑을 불붙게 하고, 아티스의 가슴에는 납 화살을 쏘아 사랑을 잊게 하라고 했다. 에로스가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의 명령대로 실행하자 화살을 맞은 이아는 아티스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지만, 납 화살을 맞은 아티스는 사랑이 싸늘하게 식어 이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아는 아티스에게 자기가 싫어졌느냐고 물었지만 아티스는 이아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이아는 서글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고 그제야 아프로디테는 후회한다. 그래서 이아를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제비꽃으로 만들어 태어나게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제우스가 제비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제우스는 시냇물 신의 딸인 이오를 사랑하게 되었다. 둘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질투심 강한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들키고 만다. 겁이 난 이오는 얼른 양으로 변신해 숲에 숨는다. 눈치를 챈 헤라는 양으로 변신한 이오를 괴롭히고 이오는 헤라의 질투를 피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닌다. 제우스는 이오가 너무 가여워 어린 양이 된 이오의 식량으로 이오의 맑은 눈동자를 생각하며 제비꽃을 만들어 준다. 이 작고 앙증맞은 제비꽃은 하늘의 별과 같이 보는 것으로 그리스의 국화로 그리스어로 이온(ion)이라 한다.

 제비꽃의 꽃말은 여러 가지로 색깔에 따라 다르다. 흰색은 소박함, 보라색은 사랑, 노란색은 수줍음, 하늘색은 성실과 청결을 나타낸다. 하지만 모든 꽃말의 공통점은 성실과 겸손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속눈썹처럼 그저 아름답게 보이는 제비꽃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처럼 슬픔을 간직한 꽃이기 하다.

 코로나19가 난장판을 만든 아픈 봄이다. 시인 안도현은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간다`고 했다. 봄이지만 매년 같은 봄은 아니다. 제비꽃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깨달음을 실천해 코로나19의 상황을 이겼으면 바란다. 도서관의 책, 강의실의 유명한 철학자에서 배우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니다. 제비꽃 오랑캐꽃은 짐짓 아닌 척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심을 버려야 함을 일깨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존재한다. 어느 하나 부정할 수 없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은 제비꽃 한 포기에서 깨달음은 온다. 겸허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다양한 제비꽃들이 생명의 환희와 성실과 겸손을 노래할 것이다. 제비꽃은 언제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진 야생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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