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김만중은 어머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 노도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남해에 온 같은 유배객인 약천 남구만은 귀양이 풀려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유배생활을 이어간 데 비하여 서포 김만중은 거의 돌아갈 희망이 없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서릿발 같은 강직한 선비정신으로 혼탁한 세상을 계도하려던 한 많은 유배객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오늘도 푸른 파도는 노도의 가슴팍을 무섭게도 때린다.
지금 고향에는 노도 문학의 섬 조성이 거의 끝났다. 보물섬 남해가 다른 지방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유배문학연구소장 박성재 씨가 주장하는 구운몽의 남해 창작설에 힘을 모아 어느 날 황당하게 빼앗긴 남해창작설을 도로 찾아와야 할 때다. 일본에서 발견된 저자 불명의 어느 서포연보에 `몽환`(夢幻)이라는 특정한 단어 하나가 실려 있다 해서 선천창작설로 둔갑한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룗사씨남정기룘는 숙종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남해에서 지었다. 이른바 목적소설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남해 적소에서 육화공에게 육필(肉筆)로 어느 편지에 답장을 쓰게 되었고 "인생은 진실로 한바탕 꿈인가 합니다"로 끝을 맺게 되는데 그것은 곧 `일장춘몽`(一場春夢)과 연결되고 구운몽의 소설 시작으로 연결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즉 남해 적소에서 기록한 그의 편지 `일장춘몽`(一場春夢)의 뜻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필자가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노도에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섬 주변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달 밝은 밤 강태공 낚시로 몇 밤을 보내면서 서포의 마음으로 들어가 시조 한 수로 그의 한을 달랜 적이 있다. 그리고 읍성의 중심학교 근무를 마치고 노도 분교에 근무 희망서를 냈으나 잘되지 않았고 곧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포의 심정으로 쓴 필자의 시조 한 수를 소개드린다.
붉은 동백 떨어지듯 노도의 한
벼랑 끝 걸린 달이 출렁이는 그 까닭을
몰라서 묻는다면 구운몽을 들려주랴
동백도 적객의 시름 눈물이듯 떨어지다.
내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 어머님 전에
외딴섬 떠내려가 뭍에나 부러진들
어머니 부르지도 못할 위리안치 묶인 몸
임이여 사씨남정기 그 뜻 새겨 아뢰오만
북녘 하늘 싸늘하여 봄을 보기 어려울 듯
어머니 윤씨행장을 올려볼까 하나이다.
- 필자의 제2시조집 「남녘 바람 불거든」 (2010년) -
나의 고향, 나의 삶 32
저작권자 © 남해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