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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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3.30 12:17
  • 호수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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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1980년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보수동 책방골목 끝자리쯤 조그만 분식집을 하셨다. 이곳에는 간혹 막걸리에 먹장어구이나 부침을 먹고 가는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유달리 친근하게 대하는 이와 정이 들었다.

 항상 가게에 올 때면 그는 과자나 초콜릿을 주곤했고 음식만 먹고 바로 가지 않고 나와 이야기를 오래 나누곤 했다. 어느 날 그가 장기를 배우고 싶다 해 나는 어머니에게 장기판을 사 달라고 졸라 장기판을 가질 수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장기실력은 겨우 차·포·마·상의 움직이는 길과 규칙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에게 의기양양하게 점프. 점프 등의 단어만으로 가르쳤다. 사실 그에게 장기를 가르쳤다기보단 같이 배우는 현실이었다. 처음 장기를 접해 대결할 땐 승패보다 상으로 마를 잡고 마로 포를, 포로 차를 잡아내면 왠지 지더라도 우쭐해지곤 했다. 

 그렇게 배운 장기는 그의 발길이 끊기자 자연스레 두지 않게 되었는데 몇 년 전에 주변 지인이 컴퓨터로 두기에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를 두었더니 지인이 훈수만 두지 말고 한 수 두자고 하여 겨루게 되었다. 지인은 상 장기를 두었는데 첫판은 포지션을 굳히다 완패했다. 다음 판부터 상 장기 위치가 완성되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시작과 동시에 포와 상을 바꾸었더니 몇 판이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게임 후 지인이 포와 상을 바꾸는 이상한 장기를 둔다며 너스레를 떨기에 "하수인 내가 이길 수는 없으나 너의 상은 차보다 무서우니 위치 선정전에 공격하는 전략을 쓰게 되었고, 상에 얽매이는 전략의 너에게 무승부를 올리는 성과를 보았다"며 말했다. 

 돌아보니 삶이 장기판과 닮은 듯하다. 하수일 땐 왕을 잃는 줄 모르고 차를 잡으면 이길 듯 행복해하고, 중수가 되면 각각의 규칙과 위치에 얽매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선 적당히 양보하고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얽매인 규칙마저도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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