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과 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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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싸움과 밥값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4.02 16:46
  • 호수 6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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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주인의 기척만 들려도 살랑살랑 꼬리부터 흔들어 대니 스토커가 따로 없다. 매번 반가운 체를 하고 재롱을 피우자면 여간한 일이 아닐 텐데 제 깐에도 먹고 살기 위해 오버하는 것 같다. 아니면 말 못하는 짐승이 외로움을 타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짠할 때가 있다. 집에서 키우는 견공 이야기다.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면 주인님의 애무에 감격하여 손이고 발등이고 잔뜩 침을 발라 놓는다. 질척한 타액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지만 친근함의 표시라는 것을 알기에 꾹 참고 머리 마사지 서비스에 들어간다. 반쯤 세운 열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는 사이 아예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 느끼는 듯한 표정이 가관이다. 

 늑대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개가 인간과 더불어 생활한 지는 3만 년쯤 되었다. 처음부터 다 자란 야생 늑대를 사육했을 리는 만무하고, 사냥을 나갔다 늑대 새끼를 발견하고 데려와 길들인 것이 그 시초라 추정된다. 개는 사람과 비교해 후각은 100배 이상, 청각은 4배 이상 발달했다. 평범한 동네 개부터 반려견·애완견·인명구조견·썰매견·서커스견·사냥견·경비견·군견·경찰견·마약탐지견·수색견·실험견·인도견·투견·보신견 등 소질과 재능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며, 인류의 삶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오랜 세월 인간과 개가 동고동락하다 보니 다른 듯 닮은 점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밥그릇에 대한 집착이다. 예를 들어 개가 두 마리 이상이면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사이좋게 놀다가도 밥그릇 앞에만 서면 눈빛이 홱 바뀐다. 밥그릇을 차지하려고 의리나 도리나 체면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인간은 배가 불러도 여전히 식탐하지만 개는 일단 배가 차면 밥그릇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또한 개는 사람처럼 자신의 영역을 사수하는 데 필사적이다. 특히 밤이 되면 불침번을 서느라 눈에 불을 밝힌다. 노고에 대한 답례로 조단백질 함유량 등 성분표를 살피고 제조회사를 따져 사료를 구입하는 편이다. 밥값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공짜 밥을 먹는 개는 없다는 것이 다년간 개를 키운 소감이다. 

 개는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없어 동물 이전에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개 역시 인간이 돌봐주지 않으면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주인과 소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사람 팔자 못지않게 개 팔자도 뒤웅박 팔자다. 주인 재산의 일부를 상속하고 해외 토픽을 장식한 부잣집 애완견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목줄에 묶인 채 평생 집 마당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물의 권리를 존중한다며 가축을 도축할 때 알라신에게 기도한 후 단칼에 숨을 끊기도 하고 부상당한 말이 회생 불가능하면 주인이 직접 총을 들기도 한다. 그래 봤자 인간중심적인 행위일 뿐 동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아무튼 개는 정서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니만큼 개고기 식용을 재고해 볼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한 나라의 오랜 관습과 문화가 일방적으로 폄훼의 대상이 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당나라의 조주선사는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無)`고 답했다. 그 유명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다. 이때의 `무`란 `있다, 없다`의 언어적 사고에 꺼들린 `무`가 아니라 절대적 깨달음의 `무`라 여겨진다. 그런데 개에게 불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감정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새끼를 핥고 젖을 먹이는 어미 개에게서 인간의 모성애가 엿보인다. 자유를 갈구한 나머지 담장을 뛰어넘은 우리 집 녀석만 봐도, 개라 해서 밥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밥그릇에 홀려 귀한 한생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

 사람을 공격하는 횡포한 개도 없지 않지만 사람 못지않은 활약상을 펼치는 견공도 많다. 이번 기회에 인간의 반려이자 소중한 존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견권을 고려하여 동거 중인 개의 실명을 공개하지 못한 점, 널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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