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둘째 딸은 운전면허를 따겠다며 학원등록을 했다. 면허만 있으면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딸에게 면허보다 중요한 운전상식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법규 등을 설명했다.
과학의 엄청난 발전으로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조작법은 며칠만 배워도 될 만큼 간편해졌다. 그에 반해 요즘 운전자의 기본 소양은 발전한 기술력만큼 퇴보했고 자기 위주의 이기적 운전으로 많은 사고가 유발되고 있다. 남을 해하고 자신마저 큰 위기를 맞는 상황이 많아짐을 설명하는데 딸은 이해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몇 주 후 딸이 면허를 취득하고 도로연습을 시켜달라기에 연수를 시작했다. 읍내 주도로를 주행하던 중 건널목 앞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주위를 살피는 노인 두 분을 보게 됐다. 정지선에 맞추어 정차하라 얘기하니 딸은 정차했고 노인 두 분은 더딘 걸음으로 횡단을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이 속도를 줄이다가 노인의 더딘 발걸음이 답답했는지 멈추지 않고 지나가 버리자, 딸이 놀라 "저래도 돼?" 묻는데 순간 화가 났다.
두 분이 건널목을 건너고 차량을 출발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번엔 건널목이 주변에 있는데도 몇 걸음 아끼려 무단 횡단하는 이가 있었다. 차량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가 서라" 명령하듯 당당히 건너는 이가 딸과 나를 다시 당황케 했다.
1킬로미터도 안 되는 읍 주도로를 지나가며 몇 번의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고 딸은 전에 못 본 우리의 무질서함과 안일함에 나에게 열변을 토했다.
운전 연수 후 딸과 걸어서 밥을 먹으러 가며 길 건너편 식당 앞에 섰다. 멀리 떨어져 있는 건널목을 보며 딸에게 건널목으로 건너자 말하며 걸었다.
차를 타면 내가 탄 차량이 우선이 되고 보행자가 되면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 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바뀌는 우리의 마음을 운전면허보다 먼저 살펴야 하는 게 아닐까?
김충국의 시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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