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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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12 09:59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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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기의 남해이야기
이 처 기시인
이 처 기
시인

 민족시인 윤동주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와 절친했던 남해사람 정병욱 교수는 그리 회자되지 않았다. 남해 출신 문인이거나 남해를 거쳐간 유명 문학가들이 많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 시인 김기수, 아동문학가 임신행 등은 향토 출신은 아니면서도 남해를 살다간 유명 문인이다. 민족시인 윤동주와 같이 수학했고 그의 문학유고와 자취를 잘 관리해 그를 알리게 한 숨은 공로자가 정병욱 선생이다.  

 남해출신 정병욱 교수는 어떤 분인가? 정병욱은 1922년 설천면 문항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을 역임한 국문학자다. 1952년 룗국문학의 개념 규정에의 신제언룘을 자유세계에 발표한 이래 여러 지면에 수많은 국문학 관계 논문을 발표했고 대표적 저서로 룗국문학산고룘, 룗시조문학 사전룘 및 수필집 룗바람을 부비고 서 있는 말들룘 등을 간행했다. 특히 룗시조문학사전룘은 2376수의 시조를 엮고 작품별로 작가와 출전을 밝혀 우리문학의 원류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윤동주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은 광양군 망덕포구에 있다. 1934년 정병욱의 부친 정남섭 씨가 양조장을 운영했기에 광양 망덕에 터전을 잡은 것이다.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그곳에서 윤동주를 만나니 북간도의 시혼이 남도에서 부활하게 된 인연의 시작이다. 윤동주가 창작에 몰두하던 1941년, 정병욱은 하숙을 같이하며 "마음을 주고 받는 글벗"으로서 시작에 조언을 하기도 했는데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 등 대표작이 이 무렵 쓰였다.

 이런 우정으로 윤동주는 자선시집을 정병욱에게 증정한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간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젊은 나이로 순절하게 된다. 1944년 정병욱의 부모는 징병에 끌려간 아들을 대신하여 윤동주의 유고를 가옥의 마루밑에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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