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꽃과 산수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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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꽃과 산수유 꽃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11 16:44
  • 호수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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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37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얼마 전 산을 오르는데 등산객 두 명이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며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르내리던 등산객들이 두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더 열을 올려 이제는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연인즉 봄을 맞아 산록에 노랗게 피어난 꽃을 한쪽에서는 산수유 꽃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강나무 꽃이라 하여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오십대쯤 되는 여자분이 산수유 꽃을 지지하며 편을 들었다.
 "보세요! 생강이 어디 이런 깊은 산에서 납니까? 산에서 피는 산수유 꽃도 모르세요?"
 산수유 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은 자기편이 생겨서 신이 났고 생강나무라고 주장하던 사람은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꽃은 생강나무 꽃이 분명했다.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도 산수유 꽃이라고 말하며 그쪽으로 기울어지자 생강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은 어쩔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하산하려고 했다. 옳은 주장을 펼친 사람이 다수의 횡포에 당하는 형세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필자는 불쑥 큰 소리로 말했다. 
 "이 꽃은… 이 꽃은 생강나무 꽃입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무언가 해명을 해야 했다. 흔히 두 꽃이 많이 닮아 있어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가져오는데 산수유는 그 열매를 취하거나 꽃을 감상하기 위해 밭이나 정원에 가꾸고 있어 인가 주변에 많이 있고 생강나무는 산중에 자생하고 있는 것이 우선 다르고 꽃도 자세히 보면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 꽃송이들이 좀 성기고 생강나무는 꽃자루가 짧아 꽃송이들이 촘촘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여러분 중에 생강 냄새를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겁니다. 이 나무의 피부를 좀 긁어 냄새를 맡아보면 분명 생강 냄새가 날 겁니다. 이것 때문에 생강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입니다."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나무 냄새를 맡아보고는 신기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진실이 허위에 가려 빛을 못 보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짓에 암울한 세상을 살아간 역사를 많이 보았다. 그날 어떤 사람이 생강나무를 산수유라고 하니 대개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믿었다. 단지 생강이 깊은 산에서 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지식들만 가지고 있었고 그 생강냄새의 특징으로 나무 이름을 짓게 된 연유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생강나무를 평생동안 산수유나무로 알고 생을 마감했다고 큰 일이 나지야  않겠지만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거대담론 앞에서는 달라진다. 거짓에 속아 공공의 장래와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인생을 던져버리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날 생강나무 꽃을 주장하시던 분은 필자와 같이 하산하여 산 초입의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산행 이야기와 야생화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그때 그분이 어느 유명한 대학의 식물학자란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색이 식물학자라는 내가 설명이 부족했어요. 왜 생강나무 냄새를 말하지 않았을까요. 허허허. 선생이 진정 식물학자입니다." 소탈한 그의 웃음에서 <나의 고향, 나의 삶> 이야기보다 더 고매한 삶의 달관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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