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회나무골 사람들] 소설가 김정한을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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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회나무골 사람들] 소설가 김정한을 잊었을까
  • 한중봉 기자
  • 승인 2020.05.14 14:49
  • 호수 6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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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세운 목비, 2014년께 풍파에 못 이겨 사라져
목비 복원과 현장 복원 등 `문화자산` 확보 노력 필요
요산문학관에 걸려 있는 선생의 사진과 선생의 글 산거족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
요산문학관에 걸려 있는 선생의 사진과 선생의 글 산거족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

요산 김정한은
 본지에 연재된 바 있는 이처기 남해문학회 고문의 남해이야기 따르면 요산 김정한 선생은 남해와 인연이 있는 한국 문학계에 큰 흔적을 남긴 문학인이다.

 부산 출신인 김정한 선생은 1933년부터 39년까지 남해초에서 근무했고 1939년부터 2년간 남명초에서 근무한 것이 남해와의 인연이다. 광복 후 부산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회장으로서 민주화에 앞장섰고 반외세 반독재의 일선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한국문학사에서 치열하게 농촌사회의 현실을 투시한 작가로 손꼽힌다. 부산 금정구 생가에 2006년 요산문학관이 건립됐으며, 2008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흉상이 세워졌다.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요산문학축전이 올해로 23회째를 맞고 있다.  
 
[회나무골 사람들]과 목비
 선생의 소설 [회나무골 사람들]은 기미년, 독립운동으로 자식을 잃은 노인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일제시대 기미년 독립운동과 관련해 회나무골 사람들이 겪은 일제의 탄압과 고난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의 부조리와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시대와 사회의 문제로 본질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으며, 소외되고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진솔하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목비는 2003년 제6회 부산 요산문학제 행사 후 작가회의 회원이고 당시 요산문학제 운영위원이던 남해 출신의 강달수 시인과 박윤규 시인이 선발대로 와 세운 것이다. 11년을 버틴 목비는 2014년께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문화자원으로 만들자 

 요산 선생은 남해 출신은 아니지만 남해에서 8년을 근무했으며, 남해는 1973년 발표한 선생의 소설 [회나무골 사람들]의 소설 현장이기도 하다. 지역문학계에 따르면, 소설의 현장은 현재의 회나무 자리가 아닌 롯데리아 맞은편 골목길 부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선생의 목비 복원과 관련 지역문화인들은 "선생의 흔적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 회나무 거리가 새롭게 단장되고 있는데다가 회나무 부근 정비사업이 시행되는 만큼 이 시점에 선생의 목비와 소설 현장을 복원하는 등 지역 문화자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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