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앵강고개에서 없어진 돌하르방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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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앵강고개에서 없어진 돌하르방의 행방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21 11:33
  • 호수 6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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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남해와 제주4·3 ①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경남작가회의 전점석 회원이 본지에 `남해와 제주4.3`을 주제로 세 편의 글을 보내왔다. 전점석 씨는 기고문과 더불어 "남해분들이 제주4·3과 박진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작성했다. 그동안 박진경 연대장의 흔적을 찾아서 남해 이동면 앵강고개와 남면 홍현리 그리고 제주 충혼묘지, 연대장으로 근무했던 농업학교 터를 다녀오기도 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남해 분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뜻을 전하고 싶고, 나아가서는 해원상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며 기고 취지를 알려왔다.

전점석 씨는 수필 「이름짓기」로 2018년 등단. 「인물추적 이은상」
을 <피플파워>에,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거창한들신문>에 연재했으며,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기억과 기록> 2019년 12월호에 「5·18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게재한 바 있다. 현재 경남민예총 감사와 마산역사문화보전회 운영위원,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주>


 학살자 여부로 논란이 되고있는 제주9연대장 박진경 대령의 동상이 그의 고향인 남해군 앵강고개 군민동산에 있다. 1990년 4월 7일 그의 양아들인 박익주(朴翊柱) 전 국회의원이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4월 19일에 했다. 동상 앞에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돌하르방 2기가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는 뜻의 돌하르방은 제주도민을 수호하는 석신(石神)이다. 

 2019년 4월 21일, 나는 이 동상과 돌하르방을 확인하러 남해에 갔다. 남해읍에서 출발해 성현마을을 지나니 왼쪽 편에 앵강휴게소가 있었다. 이곳이 앵강고개이다. 

 표지석에는 진실동산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휴게소 위쪽에 남해군민헌장비, 6·25월남참전국가유공자기념탑, 남해대간첩작전추모비와 함께 박진경(朴珍景) 대령의 동상이 제일 안쪽에 세워져 있다. 이 동상 뒷면에 새겨놓은 「고(故) 박진경 대령 추모문」에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1918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서 태어나서 진주고교, 일본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수석 졸업했다고 쓰여 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 경찰의 의기인물(疑忌人物)로 지목받기도 했다.
 해방 후 국군 창설에 참여해 1947년 9월 육군 중령으로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초대 인사국장을 하다가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을 야기하여 양민학살만행을 감행하자 미 군정장관 딘 소장은 박진경 중령을 보병 제11연대 연대장으로 보임하였다.

 `제주도민의 생명재산보호와 사태수습 명(命)을 받은 공(公)은… 불과 2개월 내에 소위 공산반란 해방군 주력을 섬멸한 전공에 감탄한 딘 소장은 동년(同年) 6월 1일부 육군 대령으로 특진시켰다. 그 후 산발적 준동(蠢動) 공비잔당 소탕작전 중 동년 6월 18일 미명(未明) 불행히도 적의 흉탄에 장렬히 전사하셨다. 군(軍)은 창군 최초 연대장 전사로 육군장(陸軍葬)을 거행, 정부는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고 적혀 있다. 실제는 적의 흉탄이 아니고 제주도민을 살리기 위한 부하들의 총탄에 죽었다.

 이 추모문은 1990년 4월 7일 육군대장 백선엽 5연대 창설동지 일동과 육군대장 정일권 창군동우회 일동 명의로 돼있다. 동상 양 옆에는 돌하르방 대신에 세 그루의 소나무가 순국추모 기념으로 심어져 있다. 옆에는 `고 육군대령 박진경공 순국추모기념 1990. 4. 19 포항종합제철(주) 회장 박태준`이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는 `1997. 9. 4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장 장태완(張泰玩)`이고 오른쪽에는 `1997. 9. 4 육군 74장군 동지회원 일동`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석이 각각 소나무 앞에 놓여 있다. 

 지난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의 동상철거 운동이 있었다. 남해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시민축구 전국대회에 제주도 대표로 출전한 제주주민자치연대 회원 15명은 2001년 10월 13일, 군민동산을 찾아 4·3항쟁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간단한 추도식을 갖고, 박진경 대령 동상의 철거를 주장했다. 남해신문 2001년 10월 17일자에 의하면 이들은 돌하르방 2기가 이 동상을 호위하듯 서 있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도 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돌하르방은 제주도를 상징하는데 마치 학살자 박진경 대령을 제주도 차원에서 존경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2005년에는 남해사랑청년회, 전교조, 민주노총 등 남해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남해지역운동연대회의가 박진경 동상 바로 알기운동과 동상 이전을 촉구하는 군민 서명운동을 하면서 남해군수에게 공문을 보내어 동상철거를 요청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5월 11일 성명을 내고 남해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동상 이전 촉구운동에 연대,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후 2012년경, 새롭게 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본격적인 공사를 하면서 차도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안쪽으로 옮겨 놓으면서 돌하르방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객지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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