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남해군지로 보는 고 박진경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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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남해군지로 보는 고 박진경 대령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5.28 16:17
  • 호수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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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남해와 제주4·3 ②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경남작가회의 전점석 회원이 본지에 `남해와 제주4.3`을 주제로 세 편의 글을 보내왔다. 전점석 씨는 기고문과 더불어 "남해분들이 제주4·3과 박진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작성했다. 그동안 박진경 연대장의 흔적을 찾아서 남해 이동면 앵강고개와 남면 홍현리 그리고 제주 충혼묘지, 연대장으로 근무했던 농업학교 터를 다녀오기도 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남해 분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뜻을 전하고, 나아가서는 해원상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기고 취지를 알려왔다.


 시·군에서 제작하는 시사(市史), 군지(郡誌)는 그 지역의 생생한 역사이며 공식기구가 인정한 정사(正史)이다. 일반적으로 동네 사람이, 자기 동네 일을 적을 경우에는 객관적이기가 힘들다. 그렇다 보니 온통 영웅호걸, 충신, 학자, 효녀, 열녀뿐이다. 대개 역사는 자랑스런 부분과 아픈 상처가 모두 담겨 있다. 찬란한 영광을 보면서 고생했던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부끄러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만약 찬양과 덕담뿐이라면 그건 절반의 역사에 불과하다. 

 1994년에 발간된 룗남해군지룘 제14편 성씨·인물 제2장 인물에서 박진경 대령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후 산발적 잔당공비 소탕작전 중 6월 18일 미명 적의 흉탄에 31세를 일기로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다.

 4년 전 앵강고개에 세운 동상 뒷면에 적힌 내용과 똑같다. 이동면 무림리 앵강고개 정상의 군민동산에 1990년 4월 7일 그의 양아들인 박익주 전 국회의원이 제5연대 창설동지, 창군동우회와 함께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4월 19일에 했다. 이 동상 뒷면에 있는 「고(故) 박진경 대령 추모문」에는 미 군정장관 딘 소장이 1948년 5월 6일, 박진경 중령을 제주도 보병 제11연대 연대장으로 보임하였고, 불과 27일 만에 대령으로 특진시켰다. `그 후 산발적 준동(蠢動) 공비잔당 소탕작전 중 동년 6월 18일 미명(未明) 불행히도 적의 흉탄에 장렬히 전사하셨다`고 적혀 있다. 정확한 표현은 적의 흉탄이 아니고 제주 도민을 살리려는 부하들의 총탄에 죽었다. 

 연대장 박진경 대령은 무효가 된 5·10선거를 6월 23일에 다시 하게 된 제헌의원 재선거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강경토벌작전을 추진하다가 부임한 지 44일 만인 6월 18일 새벽 3시, 제3중대장 문상길 중위와 신상우 일등상사, 손선호 하사, 양희천 이등상사, 강치규 중사, 배경용 하사 등 여섯 명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박진경 대령이 제주도에 머문 기간은 불과 한 달 열흘이었다. 박진경 대령의 장례는 육군장 제1호로 치러졌다. 단독정부 수립에 성공한 이승만 정부는 박진경 대령을 준장으로 추서했다.

 박진경 연대장을 직접 저격한 손선호 하사는 재판정에서 "우리가 화북이란 부락에 갔을 때 15세가량 되는 아이가 그 아버지의 시체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해하였다.… 사격연습을 한다하고 부락의 소, 기타 가축을 난살(亂殺)했으며 폭도가 있는 곳을 안다고 안내한 양민을 안내처에 폭도가 없으면 총살하고 말았다. 또 매일 한 사람이 한 사람의 폭도를 체포해야 한다는 등 부하에 대한 애정도 전연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수정, 보완하여 재발간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확인되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10여 년이 지나서 다시 발간하면서 사망원인이 바뀌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집필위원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참과 거짓은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16년 만인 2010년에 다시 발간한 「남해군지」 하권 제11편 성씨, 인물편에 박진경 대령을 소개해놓았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인 849쪽에 박진경 대령을 4.3항쟁 토벌대장으로 소개하면서 `그 후 산발적 소탕 작전 중 6월 18일 부하의 총에 맞아 31세를 일기로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다. 

 글의 끝부분에서는 괄호 안에 `박진경의 경우 차관급 이상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1994년 발행본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수록하였음을 밝힌다`고 명기해놓았다. 

 이 두 권의 「남해군지」를 비교해보면 `적의 흉탄`이 `부하의 총`으로 바뀌어 있다. 앞으로 앵강고개에 있는 동상 뒷면의 내용도 고치고, 최소한 이동면이 아니라 남면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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