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화해를 위해서
상태바
제주4·3의 화해를 위해서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6.04 11:17
  • 호수 69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 남해와 제주4·3 ②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 점 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경남작가회의 전점석 회원이 본지에 `남해와 제주4.3`을 주제로 세 편의 글을 보내왔다. 전점석 씨는 기고문과 더불어 "남해분들이 제주4·3과 박진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작성했다. 그동안 박진경 연대장의 흔적을 찾아서 남해 이동면 앵강고개와 남면 홍현리 그리고 제주 충혼묘지, 연대장으로 근무했던 농업학교 터를 다녀오기도 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남해 분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뜻을 전하고, 나아가서는 해원상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기고 취지를 알려왔다.


나는 박진경 대령의 가족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지난 11월 18일, 다시 남면 홍현리를 찾았다. 홍현보건지소 옆에 망우정(忘憂亭)이라는 이름의 작은 정자가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망우정에 앉아서 무슨 근심을 잊을려고 했을까.

정자 왼쪽에는 홍현1리 동민들이 1983년에 룗충효(忠孝)룘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에는 1981년에 홍현1·2리 동민들이 세운 룗소강(素江) 박진용(朴珍鎔) 송덕비룘와 1986년 홍현1리 동민들이 세운 룗송원(松原) 김상익(金相益) 공적비룘가 나란히 있다. 박진용은 박진경의 큰 형이다.

보건소 옆에 있는 경로당에 가서 박진경 대령의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웃마을인데 아랫마을로 가라고 하였다. 아랫마을로 내려가서 마을 입구 밭에서 일하시는 부부에게 물었더니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해놓은 집이라고 가리켜주었다. 아랫마을 바닷가에는 멋진 방품림이 동네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록 학살자이긴 하지만 당시에 한반도 전체가 그렇듯이 박진경 대령도 미·소 냉전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4·3항쟁이 독립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5·10 단독선거가 분단으로 가는 길목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니까 군인인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고 군인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대령 계급장을 달아 준 딘 장군이었고, 이미 정해진 5·10 단독선거를 차질없이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 당연히 이승만 정부는 준장 계급을 추서했다. 나는 박진경 대령의 유족들이 제주4·3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지금부터라도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와 추모행사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0여년 전 지리산 기슭에서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6·25전쟁 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빨치산과 토벌대로 활약했던 산증인들이 반 세기만에 만나 당시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화해의 손의 잡았다.

제7회 지리산천왕축제가 한창인 2007년 10월 26일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계곡이었다. "우리는 이념과 전쟁에 휘말린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때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단지 살기 위해 적을 죽이고 죽음을 당하는 현실에 무슨 이념이 있고 좌·우 사상이 있었겠냐?"며 잊고 싶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회고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백발이 돼 버린 노인들은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남북통일을 이루는 광경을 보고 눈을 감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 두 정상에게 보내는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촉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낭독하고 2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 당시 좌우익은 물론 억울하게 죽어간 민군의 넋을 기리는 합동위령탑 및 위령비를 세워줄 것을 호소했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았다. 모두가 피해자이다.

현재 박진경 대령은 난처한 처지이다. 몇 년 전에는 남해 앵강고개의 동상도 옮겨야 했고, 조만간 제주 충혼묘지의 추도비도 옮겨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인가. 해원(解怨)을 해야 상생(相生)을 할 수 있다.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만나서 한풀이를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가해자는 현충원과 충혼묘지에 제각각 무덤과 추모비가 있는데 희생자들은 제대로 자기 무덤도 없고, 이름도 없는 피해자가 아직도 있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4·3유족회 전체뿐만 아니라 박진경 대령과 그의 부대에게 직접 죽임을 당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