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근우 건축사 "건축으로 영혼에 안식처 선물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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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우 건축사 "건축으로 영혼에 안식처 선물하고파"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0.06.12 11:38
  • 호수 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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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지보다 더 아름다운 곳 남해" 소감 밝혀
천근우·이금란 부부.
천근우·이금란 부부.
2018년 11월 24일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을 마친 뒤 찍은 기념사진.
2018년 11월 24일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을 마친 뒤 찍은 기념사진.

  화제의 인물 | 힐링남해에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천근우·이금란 부부  

그가 부인과 함께 맨 처음 정착한 집은 남해읍 섬호마을이었다. 두 사람은 남해의 자연을 만끽했다. 남해읍 아산마을 아산정수장 옆 망운로 135번지에 세련된 건물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설천면 봉우마을의 한 언덕에 건축물 하나를 세우고 있다. 한 `서울 촌놈`이 올해 남해에서 벌인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 범상치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단하면서도 따뜻함이 내재된 사람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인생 2막을 남해에서 준비 중인 천근우(60·예천종합건축사 사무소 대표이사) 건축사의 이야기다. 그는 동갑내기 부인 이금란(60·예천종합건축사 사무소 이사) 씨와 함께 남해에서 건축을 통해 `함께 배우고 서로 베푸는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지난 5일 남해사무실에서 그가 살아온, 꿈꾸는 남해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천근우 건축사의 사무실에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평범한 곳에서 볼 수 없는 조형물과 작품들이 반긴다. 뒤이어 인상 좋은 천 건축사가 서울말로 반긴다. 마주한 그와 평범한 인사를 나누며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천근우 건축사는 자신이 느낀 남해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남해는 힐링 그 자체
 천 건축사는 "도시의 복잡함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힘들다. 항상 쫓기듯이 밀리듯이 살아왔다. 어쩌면 방향성을 잊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며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자 사람냄새 나는 곳이 남해인 것 같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와 함께 "건축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봉사를 하며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녔다. 여행을 좋아해 일과 관계없이 훌쩍 떠나기도 했다"며 "국내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남해를 본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남해는 특히 외해와 내해 쪽 전망을 다 볼 수 있다. 모든 섬이 그렇지는 않다. 남해를 관조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 가듯이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가한 마음으로 천천히 자연을 만끽할 수도 있다"며 "남해는 힐링 그 자체"라고 말했다.

 천 건축사가 남해를 접하게 된 계기는 지인인 동의대학교(부산) 건축과 교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인 이금란 이사는 "오래 전 자연경관을 보고 눈물이 난 경험이 있다. 그곳은 바로,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지는 아니지만 `시칠리아`라는 섬"이라며 "그런데, 남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관광차 들렀던 어느 날이었는데 벚꽃이 만개한 풍경을 음미하다 보니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금란 이사의 묘사를 들어보니 설천면 왕지마을 벚꽃 길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천국을 가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남해사람들은 매일 보는 풍경이라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지인들에게도 남해로 오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이들은 남해만의 독특한 지역문화에 빠져있다. 지난 3월 남해읍 섬호마을로 이사를 온 천 건축사는 "여러 모임이 있어 사람들이 만나는 횟수가 많다. 부부가 같이 움직이는 모임문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기회가 많은 독특한 남해문화에 적응하고 있다"며 "정이 넘치는 문화가 반갑다"고 말했다. 

건축으로 나누는 행복과 희망
 "사람을 세우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천 건축사. 천 건축사는 자신의 맡은 여러 직책 중 한국건축가협회 건축봉사위원장과 국제전문인도시건축봉사단(BAMI: Builders As a Mission International) 대표직이 자신의 소명을 잘 나타낸다고 자부한다.

 천 건축사는 1999년 건축으로 이웃들을 돕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한몸 건축인모임`을 만들었고, 2003년부터 현장사역 중심인 건축선교회로 발전시켰다. 

 이후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2007년부터 국제전문인건축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하계건축캠프를 개최하고, 봉사활동을 해오다 2010년 비영리민간단체로 국제전문인건축봉사단을 등록했다. 그간 봉사단 활동을 통해 천 건축사는 16개국에서 5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에 대해 천 건축사는 망설임 없이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현장`이라고 꼽았다. 그는 "10대 소녀들이 임시 텐트에 살면서 성폭행당하고 매춘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무방비인 현실이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천 건축사는 1500명이 넘는 지진 고아들을 위한 안전텐트를 기획해 아이티 정부에 제안했고, 아이티 정부는 텐트를 세우기 위한 대지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천 건축사는 국내 정·재계 인사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음으로 양으로 홍보했지만 아쉽게도 전체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천 건축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부터 마음의 빚이 생겼다. 아이티를 돕지 못했지만, 우리 주위부터라도 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천 건축사는 가까운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작업으로 어르신들의 보금자리 마련에도 힘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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