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 선생의 소설 중 남해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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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 선생의 소설 중 남해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6.26 16:31
  • 호수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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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 김정한 선생과 남해, 그리고 남해의 문화 3
특별기고 │ 강달수 시인

강달수 시인의 `요산 김정한 선생과 남해, 그리고 남해의 문화`를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강달수시인
강달수
시인

두 번째는 「월광한」이다.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선구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월광한」은 훗날 1956년에 발간된 첫 소설집 「낙일홍」에도 수록되어 있다. 「월광한」에 나오는 s포구는 선구리로, 선구마을은 본동 항촌리에서 분가된 마을이다. 요산 선생이 이 작품을 쓸 시점에는 선구마을에 제주 해녀들이 상당히 많이(마을 주민의 약 60%) 기거할 정도로 유명한 어촌이었고 지금도 해녀가 몇 분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월광한」의 줄거리는 s포구로 출장을 온 하급관리인 남자 주인공과 토실토실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해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요산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둥그스럼한 턱, 작으마한 입, 또렷한 콧잔등, 짧은 듯한 이마 밑에 별같이 빛나며 정이 소복소복 사모친 듯한 아미, 도랑치마 밑의 미끈한 종아리의 육감적인 매력의 소유자, 제주 해녀 은순과의 연애 소설이다. 요산 선생의 작품은 리얼리즘이나 민족주의적 작품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애정 소설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월광한」의 배경은 한때, 남면 다랭이마을이 제일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 다랭이 마을로 잘못 기재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잘못 인식되기도 했으나, 소설 속에 s포구라는 이니셜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고 지금도 해녀가 살고 있으며, 전마선도 많이 볼 수 있는 선구마을이 정확한 「월광한」의 배경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요산 선생도 「월의 바다와 해녀」(1967)라는 그의 수필에서 「월광한」 소설을 쓰기 위해 1939년 8월, 남면 선구리에서 며칠을 머물며 그들의 물질과 생활, 그리고 민요 등을 취재하면서 어울려 술도 마시고 뱃놀이도 갔다고 밝히고 있어서 지금은 이론이 없는 현실이다. 선구리에서 출생하여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김기찬 옹(1931년생)에 의하면 선구리는 당시나 지금이나 80여 세대가 살고 있고, 배가 많이 드나든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인 `배구미 마을`이고, `선구 줄끗기 보존관`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아름다운 조약돌로 유명한 선구리 해변 앞바다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작품 속에서는 뻐꾸기 섬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목도이다. 아마도 아래의 사진처럼 섬이 누워 있는 모습이 뻐꾸기를 닮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선구리 앞바다에는 여전히 전마선이 많이 떠 있고 해녀가 물질하고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목도는 해변가에서는 드물게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섬으로 밀물 때는 섬이지만 썰물 때는 다시 향촌마을에 연결되어 걸어갈 수도 있는 곳이다. 출장지에서 만난, 피부가 뽀얗고 눈이 예쁜 제주 해녀 은순이로 인하여 출장기일조차 연장한 주인공이 은순과 단둘이 만나, 고고한 달밤에 사랑스런 여인 은순이 젓는 전마선을 타고 뻐꾸기 섬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가슴 뛰는 사랑과 일탈을 다음과 같이 마지막 장면에 묘사하고 있다.

바로 내 앞에서 옷깃을 휘날리며 배를 젖는 은순이에게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도 남아 있지 않다. 삶도 죽음도 사랑도 그밖에 어떠한 것도 벌써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수는 없다. 오직 영원한 달과  바다와 내 고독한 영혼만이 엄숙한 적막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를 뿐이다. 
- 「월광한」의 마지막 부분


세 번째는 「낙일홍(落日紅)」이다. 낙일홍도 「월광한」과 같이 194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조광지에 발표되었다. 영순, 혜순, 경호 세 자식과 아내를 둔 가난한 교사인, 주인공 박재모 가 6년에 걸쳐 갖은 고생 끝에 산골(남면 당항마을)에 학교를 겨우 지었다. 그런데 그 학교가 분교에서 벗어나 정식 학교가 되었을 때는 일제의 민족차별로 교장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평교사로서 더 오지(고현면 갈화초등학교)로 발령을 받는다는 소설이다.
여기서 산골학교(남명 심상소학교)는 요산 선생이 근무했던 남면에 소재한 지금의 남명초등학교이고, 새롭게 발령받아 가는 오지의 분교(갈고지 간이소학교)는 고현면 갈화마을에 있는 학교였다. 지금은 폐교가 된 갈화초등학교이다.
갈화마을은 소설 작품 속에서는 갈고지로 표기되어 있고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갈화마을을 갈고지로 불렀다. 갈화초등학교는 1939년에 개교되어 1999년 9월에 폐교가 되었으니 연도를 비교해 보아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남명초등학교 현관 벽에는 역대 교장들의 사진과 이름이 걸려 있는데 초대 교장은 이홍주라는 조선인이었고 2대 교장은 미야우찌(官內眞證)라고 정확히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룗낙일홍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실제 인물이었고 그 내용도 실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지금은 현관에 부착되어 있지 않다. 그 당시 남명초등학교 운동장 옆에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매립되어 공설운동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갈화초등학교도 1999년 9월에 폐교가 되어 지금은 보물섬 남해 삼베마을로 활용되고 있다.
2006년 남명초등학교에서 확인한 전출직원 이력서에서 요산 선생은 1939년 5월 13일자로 남명초등학교에 발령받아 1940년 3월 31일까지 근무하였으며 실제 사표 수리일자는 5월 31일이라고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후일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신 그 당시 요산의 제자였던 김경수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일제 말에 조선어 말살정책이 기승을 부릴 때여서 다른 교사들은 전부 일본어로 수업을 하였지만 그런 살벌한 가운데에서도 요산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하는 교육을 일본어로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항상 조선어로 수업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맥락으로 요산 선생은 교직을 과감하게 사직하고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인수하여 부산 동래로 다시 이사 갔을 것으로 사료된다.
식민지 민족의 한을 담은 서민들의 애환을 나타내는 소설로, 식민지에 처한 서러움과 땀과 정성으로 가꾼 학교의 교장직을 단 몇 글자의 전보로, 잃어버린 절망적인 심경을 서산에 지는 낙일에 비유한 작품이다. 그러나 요산 선생은 낙일(落日,노을)을 서산에 지는 해이기도 하지만, 다음날의 더 밝고 환한 아침 해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측면도 있고 노을처럼 붉고 아름답게 빛난다고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요산 선생도 남명초등학교로의 전근에 대해 룗문학과 인생룘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남명? 남면에 있는 학교란 건 알고 있었지만 과연 어떤 곳인지는 미처 몰랐다. 다만 그즈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해 4월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을 학부형들이 맹렬히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중간 생략) 그 배척 이유는 그 학교가 설 때부터 와서 교사를 짓고 지금의 6학급이 되기까지 학교를 키운 이 아무개란 조선인 교장이 학부형들의 신임과 존경을 받고 있던 터인데 갑자기 3학급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로 쫓겨 가고, 하동 산골에 있는 쬐깐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던 미야우찌란 일본인 교장이 덜컥 부임해 왔기 때문에 반대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요산 선생이 이 아무개라고 적은 조선인 교장이 바로 남명초등학교 초대 교장인 이홍주라는 것이 2006년 남명초등학교 현관 옆 벽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2019년 11월 요산문학기행시 남명초등학교에 들렸는데 역대 교장들의 사진은 어디론가 옮겨지고 없었다.
보물섬 남해는 어느 곳이든 다 아름답지만, 특히 일출은 상주면 금산 정상과 남면 가천이 유명하고, 일몰은 고현면 특히 갈고지 쪽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장엄하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만큼 깊은 고현면의 깊디깊은 노을은 누구나 한번 보면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고 사진작가들의 석양 촬영의 명소로 소문나 있다. 룗낙일홍룘의 끝 장면에서도 주인공 박재모가 아름다운 갈고지의 석양(낙일)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몇 자국 안 떼놔서 갑자기 아주 영 뜻밖에 딴 생각이 불쑥 나서 가슴 속이 불시에 후련해졌다. 마치 악몽을 깬 듯하였다. 뉘엿뉘엿한 낙일이 일찍 보지 못했을 만큼 붉고 아름다웁게 빛나 보였다.
"좌천이든 뭐든 좋다. 어서 갈고지나 가서 갯놈 애들하구 고기나 잡고 지내자!"
재모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기다란 그림자를 고요히 끌고 돌아갔다.

<다음호에 계속>

강달수 시인 약력

1997년 <심상> 등단.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사)부산광역시인협회 부이사장, 부산사하문인협회 회장, 김민부 문학제·김민부 문학상 운영위원장, 강달수 시창작교실 원장.
전)화전 문학회장, 재부남해군향우회 대외협력분과 위원장·문화분과 위원장 역임.
시집 : 「라스팔마스의 푸른 태양」, 「몰디브로 간 푸른 낙타」, 「달항아리의 푸른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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