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넘은 화전농악의 맥, 힘차게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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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넘은 화전농악의 맥, 힘차게 되살린다
  • 김종수 기자
  • 승인 2020.07.03 11:58
  • 호수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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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마을화전농악단 창단&전수관 개소

장항마을 다목적창고가 남해화전농악의 계승, 발전을 위한 화전농악 전수관으로 활용된다.
장항마을 화전농악단(단장 박기홍)은 지난달 28일 장항마을 주민들과 장충남 군수, 하영제 국회의원, 이윤원 재부남해군향우회 직전회장 등 여러 내외빈들을 초청한 가운데 화전농악 장항마을 전수관 개소 및 창단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마을주민들의 박수와 환영 속에 장항마을 화전농악단기 입장으로 문을 열었으며, 개회선언과 연혁보고에 이어 박기정 이장과 최채민 서면복지회관 추진위원장이 각각 박기홍 단장에게 장항마을 화전농악단발전기금과 축하꽃다발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어 꽹과리(상쇠) 전수식이 이어졌다. 전수식은 거동이 불편한 기능보유자 박희오 님을 대신해 장일숙 고문이 전수자인 박기홍 단장에게 전수했다. 개소식 후에는 장항마을 화전농악단의 매구패 시범이 이어지며 한바탕 신명나는 장이 펼쳐졌다.
박기홍 단장은 대회사를 통해 "과거, 우리 장항마을을 통해 화전농악이 남해 곳곳에 퍼졌는데 최근 십수년간 침체기에 빠져 있어서 화전농악을 다시 일으켜보고자 제2의 창단을 하게 됐다"며 "55년 농악생활을 통해 배우고 익힌 우리 화전농악을 배운 그대로 후세들에 잘 전승, 발전시켜 가도록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해화전농악의 유래와 연혁
시장 등 사람이 많은 곳이나 청하는 곳을 찾아가 연희를 펼치는 직업연희집단 중 경남지방에서는 남해화방사 중 매구패가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매구패는 마을의 평온과 백성들의 풍농, 풍어를 기원하고 생을 즐겁게 하는 연희로 유래했다.
남해군의 전통계승 계보는 해방 전 남면 석교리에 거주한 한석동(1886~1943) 님으로부터 이어진다. 한석동 님은 한회포(1884~1952) 님에게 전수했고, 한회포 님은 해방 이후 남면 죽전에 거주한 한점식 님과 서면 장항마을에 거주한 전찬기 님에게 전수해 맥을 이어왔다.
한점식 님은 석교 김태우 님에게 전수했고, 전찬기 님은 장항마을 박희오 님에게 전수해 그 맥을 이어오다 박기홍 단장에게 전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항 매구패는 남해군의 대표농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남해군의 별칭인 화전을 매구패의 공식명칭으로 사용해 남해군 화전농악이라 공포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남해매구는 1948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남면농악단이 상금을 받았다. 또 1974년, 1986년, 1989년 세 차례에 걸쳐 개천예술제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서면 장항농악단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1991년 남해화전농악단을 결성했고 그 이듬해 제42회 개천예술제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99년에는 화전농악 계승, 보급 공로로 박희오 님이 군민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서면농악단이 재결성(초대회장 박경수)됐으며 2005년 2대 전동환 회장, 2006년 3대 장일숙 회장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서면화전농악을 남해화전농악보존회로 발족해 장일숙 초대회장이 취임했다. 2007년~2009년에는 박기홍 전수자가 성명초 화전농악 학생전수지도를 펼치기도 해 면내 각종 행사마다 식전공연으로 화전농악이 울려퍼지기도 했다.
2008년 12월 박준민 2대 회장이 취임해 어려운 여건에서 근근이 전통의 맥을 이어오다 매구패의 전통계승 발전에 대한 열망과 도움의 손길이 모여 이날 화전농악 장항마을 전수관 개소 및 장항마을 화전농악단 창단을 하게 됐다. 현재 장항마을 화전농악단은 기수, 꽹과리, 징수, 장구, 북수, 소고, 포수 등 26명이 함께 하고 있다.
김종수 시민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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