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명주 베 목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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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명주 베 목도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7.13 14:02
  • 호수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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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47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파주 광탄면에는 윤관 장군 묘역이 있다. 윤관 장군은 1107년(고려 예종 2년)에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여 9성의 설치와 함께 고려 영토를 확장했다. 이율곡, 황희, 윤관을 파주 3현이라 하여 이 지방 사람들이 향토의 인물로 크게 자랑스러워하며 받들어 모심은 물론 역사에 길이 남는 우리 민족의 위인들이다. 
 필자가 오래전 그쪽 삼팔선 부근의 직장에 3년간 근무할 때 1호 관사에서 생활하면서 토요일에 서울로 올 때와 일요일 오후 그쪽으로 갈 때는 꼭 윤관 장군의 묘역 앞 도로를 지나가게 된다. 한 번씩 차에서 내려 장군의 묘역을 참배하면서 문무를 겸한 이 호걸의 기풍을 흠모하게 되었으며 주변의 노송 우거진 경관도 좋아 묘역을 천천히 걸으면서 여러 개의 비문 중 桑(뽕나무) 시비(詩碑)를 눈여겨 읽어 본 적이 있다. 
 
葉養天蟲防雪寒(엽양천충방설한)/枝爲强弓射犬戎(지위강궁사견융)
뽕잎은 누에를 길러 추위를 막게 하고/가지는 굳센 활이 되어 오랑캐를 쏜다.
名雖草木眞國寶(명수초목진국보)/莫剪莫折誡兒童(막전막절계아동)
이름은 비록 초목일지라도 참으로 국보로다/자르거나 꺾지 못하게 아이들을 훈계하리.
 
 몇 년 전에 고향에 갔다가 조부모님 유택을 돌아보던 중 묘역 가까운 곳에 아주 오래된 뽕나무 몇 그루에 무진장하게 달려있는 뽕 열매를 보게 되었다. 보라색으로 무르익어가는 열매를 몇 개 따먹다가 숨에 안차 차 안에 있던 천막을 깔고 나무에 올라가 몇 번 흔들었더니 순식간에 떨어진 그 뽕 열매는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셔벗을 만들고, 설탕에도 절여 추출물을 만들어 먹으면서 온 식구가 고향 산 오디 물에 시퍼렇게 젖었던 기억도 있다. 
 어릴 적 필자의 할머니께서는 손수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아 베를 짜셨고 한 올 한 올 정성들인 그 명주 베를 한 폭씩 떼어 식구들의 목도리를 만들어 주셨다. 아무리 엄동설한에도 이 명주 베 목도리를 감으면 포근하고 따스했다. 그리고 명주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피부가 비단처럼 고와진다면서 집안 처자들에게 명주수건을 선물로 내리셨다. 나이 들면 아무 때나 눈물이 흐를 때가 많은데 이 명주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 눈이 짓무르지 않고 이불 안감으로는 최상이라 하시면서 며느리들에게 하사품으로 나누어 주셨다. 
 당신이 세상 떠나실 때 입고 가신다며 벌써부터 만들어 두신 죽음 옷을 장롱에서 꺼내어 며느리들에게 설명해 주시던 그 모습을 어릴 때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입고 가실 옷이라고 해서 어린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윤관 장군의 뽕나무 시 한 편에서 유년이 명주실처럼 투명하게 풀려나온다. 곧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유택을 찾아 벌초를 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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