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리코네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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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리코네를 잃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8.06 14:52
  • 호수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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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 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숨졌다` 이달 초, 향년 9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엔니오 모리코네가  생전에 직접 작성한 부고장의 첫 문장이다. 지인들에게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기 위해 조촐한 가족장을 원했고, 자신의 부고를 스스로 전하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자택에서 부상을 당한 뒤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1946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생애 마지막까지 작곡가, 지휘자, 음악 감독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61년 `파시스트`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하면서 영화와의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데 평생을 투신한,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 음악의 거장이다. 그의 삶을 한 마디로 압축해 보면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수백 편에 달하는 영화 음악이 그의 탁월한 예술적 영감과 감성 안에서 줄지어 탄생했다. 게다가 작품 하나하나 전 세계 영화팬 나아가 음악팬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상의 감동을 배가시키고도 남을 음악적 창조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제나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맞춤 음악으로 영화를 한층 빛나게 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흘러 영화 줄거리는 가물가물할지언정 주요 장면의 배경에 깔린 음악의 선율만큼은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는 눈으로 보는 영화를 귀로 듣는 영화로 발전시켰다. 즉 시각의 청각화로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 기존의 작곡가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즐겨 선보인 때문이다. 휘파람 소리를 비롯하여 하모니카, 기타, 피아노,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 같은 악기의 연주음을 영화에 삽입하는 이색적인 작곡 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하모니카도 잘 불고 총도 잘 쏘는 서부의 총잡이를 화면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이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에 후보로 오른 것은 모두 여섯 차례인데 상복은 별로 없었다.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7년), 미션(The Mission, 1986년), 언터쳐블(The Untouchables, 1987년), 벅시(Bugsy, 1991년), 말레나(Malena, 2000년)가 연거푸 수상에 실패했다. 마침내 헤이트풀8(The Hateful Eight, 2015년)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모리코네라는 이름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킨 영화를 말할 때,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인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년),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 1965년), 석양의 무법자(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1966년)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미션(The Mission, 1986년),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 1988년)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황야의 무법자`의 `방랑의 휘파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년)`의 팬 플루트 연주곡인 `컥키스 송(Cockey`s Song)`,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년)`의 피아노 솔로는 영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이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듯하다. 1956년 결혼한 이후 늘 그의 곁을 지켜 준 아내 마리아와 64년간을 해로했으니 그만한 복도 없다. 부고장 말미를 채운 내용도 일생의 파트너에게 전하는 각별한 사랑의 작별 인사였다. 

 음악은 국경을 초월한다. 국내 팬 중에도 그의 음악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의 휴식을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록 세상에서 그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섬세한 러브 송들을 남겨 두고 떠난 것에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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