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어느 80대 노부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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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어느 80대 노부부의 사랑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08.14 10:22
  • 호수 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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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 유림마을 김주배·하옥선 부부 이야기
김주배 씨는 아내 하옥선 씨의 다리를 주무르고 하옥선 씨는 고마움의 눈길로 남편을 바라본다.
김주배 씨는 아내 하옥선 씨의 다리를 주무르고 하옥선 씨는 고마움의 눈길로 남편을 바라본다.
21년간 힘든 병상을 지키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김주배·하옥선 부부.
21년간 힘든 병상을 지키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김주배·하옥선 부부.

 21년 전, 그러니까 2000년 4월 9일까지만 해도 김주배(82)·하옥선(81) 부부도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1965년 읍 유림마을에 정착해 남편 김주배 씨가 남흥여객 버스기사 15년, 개인택시 10년을 하며 3남 2녀를 길렀다. 

 2000년 4월 10일 아내가 쓰러졌다. 김주배 씨는 이날을 잊을 수 없다. 병원의 진단 결과 뇌경색이었다. 이후 남편 김주배 씨의 삶은 바뀌었다. 김주배 씨는 평생의 업을 그만두고 그 길로 아내 간병에 나섰다. 그렇게 21년을 두 부부는 말 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나누며 살아왔다. 
 
뇌경색 아내에 21년째 한결같은 정성
 김주배·하옥선 부부의 하루일과는 별로 변함이 없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김주배 씨는 30~40분 정도 아내의 관절운동을 돕는다. 약을 복용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10시부터 30~40분간 다시 운동을 한다. 요즘처럼 장마가 계속되면 할 수 없지만 날이 좋으면 두 사람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흥여객 옆 유림 숲 정자나무 아래로 산책을 간다. 그곳에서 부부는 사람과 자동차와 시간의 흐름을 지켜본다.

 늘 한결같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부부에게서 늘 한자리에서 세월을 견디는 느티나무의 풍모가 느껴진다. 노부부의 일상생활을 돕는 임춘자 요양보호사는 "두 분은 늘 함께 지내지요.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어르신이 침실 옆 창가에 수국을 심고, 식사하며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도록 식물을 가꾸는 모습을 보면 두 어른의 한결같은 사랑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노부부는 가끔 재가복지센터의 직원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도 한다고. 임춘자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웃과 교류하고 베풀며 살려는 두 분에게 삶의 가르침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거의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지만 아내 하옥선 씨는 젊은 시절 감성이 여전하다. 젊은 새댁 시절부터 `목련화`, `선구자`,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 같은 가곡과 가수 이미자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하옥선 씨는 이날도 임 요양보호사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한다. 남편 김주배 씨를 바라보며 연신 입술을 달싹인다. 김주배 씨는 "20년 넘게 같이 있어서 입모양만 봐도 80%는 알아듣지요. 나한테 고맙다는 말이에요"라며 엷은 미소를 띤다. 몸도 가눌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또 그런 아내를 늘 떠나지 않고 살펴줘야 하는 고달픈 상황이지만,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보통의 부부보다 더 애틋한 정을 나눈다.
 
이웃동네 소문내고픈 부부 이야기
 상황이 조금 나아진다면 두 분이 제일 하고픈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내 하옥선 씨의 지금 소원은 제주도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이 보고 싶다는 것. 주말마다 자녀들이 찾아와 안부를 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막내가 가장 눈에 밟히시나 보다.

 김주배 씨는 잠시 머뭇하더니 소원이랄 게 없단다. 9년 전 심장수술을 받기도 하고 이제는 나이가 많아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공원에서 운동할 수 있는 건강만 허락된다면 바랄 게 없다고. 다만 이것만은 힘주어 말한다. "한 달에 한 번 진주로 병원을 다니려면 교통약자콜택시를 이용해야 해요. 이 콜택시가 남해에 일곱 대밖에 없다 보니 병원 시간에 제때 맞추어 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 같은 이들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김주배·하옥선 부부를 잘 아는 김행곤 유림1리 이장은 "부모 봉양하듯이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돌보는 김주배 씨와 하옥선 씨 부부 이야기는 주민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며 "연말에 동민들과 함께 두 부부의 미담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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