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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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8.14 10:46
  • 호수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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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51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10대를 기점으로 20년 후면 30대다. 아직은 혈기 방장하여 새로운 각오로 10대에 꿈꾸었던 일의 성취에 에너지를 더 보탤 수 있는 충분한 나이다. 2000년도에 휴전선 근처의 학교에 근무하면서 졸업반을 맡아 졸업 기념으로 20년 후에 개봉하기로 하고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그 개봉연도가 도래한 것이다.

 캡슐의 내용물은 최고 학년의 가장 감명 깊었던 날의 일기 1편, 졸업소감, 가장 친한 친구와 자기의 초상화, 단체와 개인 사진, 20년 후의 나의 모습과 좌우명을 기록한 책갈피 꽂이, 내 짝에게 주는 글, 선생님께 드리는 작별의 글, 정든 학교에 남기는 편지, 70회 졸업 앨범, 필자가 작성한 타임캡슐 제작계획서, 학급신문 등이었다. 

 표지석 아래 첫 삽을 뜬 지 한참이  지나도 캡슐이 보이지 않더니 향나무 쪽으로 파고 들어가다가 드디어 찾아냈다. 캡슐 뚜껑이 깨어져 있고 빗물이 스며들어 캡슐 안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선배나 후배들이 자기 기수의 캡슐을 찾거나 묻는 과정에서 생긴 일로 보인다.  

 졸업생들은 물이 가득 찬 캡슐에서 해저의 보물을 건지듯 조심스레 정성을 다해 한 줌씩 끄집어낸다. 찰싹 달라붙은 종이뭉치를 조심스레 한 겹씩 벗겨내어 말린다. 20년 전 어린 시절의 글씨와 그림과 어린 얼굴을 보며 흐뭇해하고 학급신문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일기장을 통째로 넣은 어떤 졸업생은 한 장씩 넘기며 깊은 묵상에 잠기기도 한다. 필자가 담임했던 졸업생들의 작품은 최대한 복원하여 다음 기회에 나누어 주기로 했다. 

 집에 와서 소독, 세척, 찢어지고 조각 난 것은 붙인 다음 다림질해 코팅작업 준비상태로 복원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 캡슐 개봉일에 못 온 사람들의 전화, 카톡이 울린다. 모두 그립다면서 8월 말이나 9월 초에 반창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역질이 다 물러가면 그때 보자고 했지만 지킬 것 지키면서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꿈은 선생님, 시인, 아나운서, 간호사, 여군, 카레이서, 축구선수, 회사원 등 다양하였지만 꿈이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 날 어린 시절 캡슐에 묻었던 순수에서 더 큰 영감과 에너지 재생산의 기회로 삼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돌아갈 255편의 작품을 오늘 코팅하면서 여백에 네잎클로버 넣으니 어울린다. 곧 주인 찾아 떠날 모든 작품을 영상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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