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형태·체계가 달라진 행정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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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형태·체계가 달라진 행정문서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10 13:21
  • 호수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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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기록이야기 27 │ 이미숙 남해군기록연구사
이미숙남해군기록연구사
이미숙
남해군기록연구사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이동면에서 생산한 문서를 정리하다가 `이동면 양아리`라는 글자를 읽고 오타라고 판단했다. 토지관련 `대부계약서`와 `소작계약서`였다. 당시는 얇디얇은 종이에 일일이 필사했던 문서였다. 당시의 면서기가 펜으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순간 생각했었지만 우리군 행정기구가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상주출장소가 1970년에 이동면에서 떨어져 나갔고, 1986년에 상주면으로 승격 분리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니 `이동면 양아리`로 기록된 문서는 오류가 아니었다. 

 지금 남해군 기록관에서는 오래된 종이 문서 중에 영구·준영구의 보존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한창 정리해가며 전자화 DB구축을 하고 있다. 스캔이미지와 함께 생산부서, 생산년도, 생산자, 결재권자와 같은 데이터들을 입력하고 있는 작업이다. 2020년 지금은 전자적으로 생산되거나 매체전환이 이뤄진 공문서들은 검색으로 문서찾기가 수월해지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관련 문서들을 찾아 원문 전체를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도 있다. 컴퓨터, 장비, 통신망의 발달 덕분이다.

 DB구축 대상이 되는 공문서들은 1934년 `호적관련철`부터 1940년대의 `매매계약서철`들로 온통 한자(漢字)다. 간간이 조사나 연결 어미를 한글로 쓴 것 이외에는 한자로 정교하게 쓰여진 `필사 종이 문서`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에는 최대한 틀리지 않고 반듯하게 줄을 맞춰 글자를 써서 공문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 당시 생산 문서들을 보면 그 사실이 증명된다. 

 한지를 반으로 접어 사용했고, 습자지만큼이나 얇은 종이를 사용했고, 산소와 탄소를 만나면 누렇게 변하는 질 낮은 종이를 사용하다가, 이면지로 종이를 아껴 쓴 시대를 거쳐 지금처럼 양질의 종이로 바뀌었다. 

 종이에 필사했던 한자 공문들은 1960년대 문서에도 계속되다가 1967년 생산된 문서를 보면 한자한글 혼용 필사로 문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후 1975년 생산된 문서를 보면 타자기를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 작성한 것은 그 이후 80년대와 90년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를 가지고 문서 서식(틀)을 만들어 인쇄한 것에 글자를 추가로 작성하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후반기에는 표준화된 공문서 서식을 온전히 사용하여 공문서를 생산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구 전자문서를 사용했고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자문서생산시스템을 활용하여 문서를 생산하고 컴퓨터 서버에 저장했다. 이후 업무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2020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생산부터 결재과정을 거쳐 수신처에 도달했다는 모든 데이터들이 다 축적 저장되는 업무관리시스템(온나라)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사용하면서 공문서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공고히 하며 생산-관리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은 대면결재가 필요한 문서의 경우 전자로 작성한 것을 종이로 출력하여 비전자(종이) 문서로 만들어 쓰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바야흐로 전자적 문서 관리 시대다. 전자문서가 80%를 넘어서고 있다. 

 공문서는 의사결정과정의 결재란이 채워져야 문서로 인정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근거로 계획되고 실행되는지, 어떤 의견들로 수정되거나 반려되는지 문서에 그대로 흔적이 남아있다. 오래된 종이문서에는 상위결정권자가 펜으로 덧붙여 쓴 글자로, 전자문서에는 수정과정이 메타데이터로 다 남아있다. 시대에 따라 문서의 형태나 체계는 바뀌지만 공정하고 책임 있는 공문서의 법적·행정적 증빙 가치는 불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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