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파업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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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파업에 관한 소고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10 13:22
  • 호수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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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불러온 비상시국에 의료진이 보여 준 헌신과 노력은 참의사의 표징으로써 의술이 인술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에 시민들은 의료진을 향해 `덕분에 챌린지`로 화답했다. 주먹 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왼쪽 손바닥에 올려놓는 간단한 손동작이지만 여기에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집단파업이라니 이 무슨 연고인가. 이번 사태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도입, 한방 첩약 급여화 등 4대 의료정책을 추진하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반발하면서 촉발되었다. 의협은 자신들의 뜻이 좌초된다면 1,2차 파업에 이어 9월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정부는 파업에 돌입한 전임의·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거부한 일부 전공의를 고발 조치했다. 

 이번 의정(醫政) 갈등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일처리이다. 의료정책을 추진하려면 사전에 관련 기관인 의료계와 숙의하면서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정책 시행의 불가피성을 납득시키는 절차가 필요했다.

 또한 파업에 동참한 의료인들에게 현장복귀 명령이 아닌 부탁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느 집단 못지않게 자긍심과 자존감이 강한 이들을 공공재에 빗대어 발언할 때부터 의정 간 신뢰에 균열이 생긴 건 아닌가 싶다. 하필 의료진들의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누적된 시기에,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 추진해도 될 일을 서두르면서 의료계의 저항을 키운 듯하다. 

 물론 정부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공공의사 육성정책이 아니더라도 의료 시스템이 취약한 지역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산부인과 병원이 없어 인근 도시로 가서 원정 출산을 하거나 의료 수준이 낮은 동네 의원 대신 불편을 무릅쓰고 도시 병원을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업, 교육기관, 의료시설이 확보되면 굳이 지방을 외면하고 도시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의료인의 양산으로 의료의 질이 저하되고 환자에게 의료비 부담이 가중될 거라는 의료계의 주장 역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 밖에 의료인의 사명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 환경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초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의 고충이 알려져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바 있다. 수입은 적고 몸만 고된 비인기 진료과목이나 재정 기반과 경쟁력이 취약한 지방 병원에 대한 기피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다. 험지의 의료인들을 언제까지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로써 속박할 수만은 없다. 중증·필수 과목이나 지방 병원을 지원하는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나라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다시피 한 이 엄중한 시기에 집단파업이라는 의료계의 결정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의료인으로서 응당 머물러야 할 공간인 의료 현장으로부터의 이탈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집단휴진이 장기화되면 의료 공백은 불가피하다. 의료인으로서 책임감과 자비심이 있다면 응급 환자, 수술 예약 환자, 만성질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절박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 진료거부 행위`라는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하한 경우에도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줄다리기하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사족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꾸려 가는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한다. IMF 때보다 더한 불경기에 개점휴업과 다름없지만 문을 닫는 날은 없다. 행여 올지 모르는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헛걸음하게 만드는 건 도의가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다. 북한 의사들은 자신의 살점을 떼어 환자에게 피부 이식을 해 주는 일도 흔해서 몸 성한 의사가 별로 없다고 한다. 지금은 너나없이 어려운 시기이다. `강 대 강`으로 치닫기보다는 하루속히 의정 간 접점을 찾아 사태를 원만히 매듭지어야 한다. 국민 없는 정부 없고, 환자 없는 의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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