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전어는 깨가 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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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전어는 깨가 서말이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11 11:47
  • 호수 7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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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달력을 넘기지 않고도 계절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체감 온도, 사람들 옷차림, 나뭇잎 색깔. 여러 가지 중 내가 계절을 느끼는 방법은 제철음식이다. 시장에서 가장 먼저 계절을 느끼는 거 같다. 바다에서 `도다리`가 봄소식을 전하면, 육지에 사는 `쑥`은 덩달아 바쁘다. 둘이 만든 도다리쑥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기나긴 겨울터널을 지나며 해풍을 맞고 자라는 남해마늘, 사오월 봄멸치떼가 몰려오면 풋마늘을 넣어 졸이고, 풋풋한 상추로 한 볼때기 입 안을 채우면 그대로 봄을 삼킨 듯하다. 서리를 맞고 자란 남해시금치에 봄 주꾸미나 새조개, 낙지를 초고추장 양념으로 무친다든지 뱅아리(백어)와 마늘종을 쫑쫑 썰어 초장을 넣고 후루룩거리면 "이게 남해맛"이다 했었다.
`남해전통시장`에 전어를 사러 나갔다. 수족관과 고무대야에 담긴 전어들이 날 사가라며 서로 꼬리를 흔들어댄다. 남해사람들은 여름 전어는 뼈째 썰어 된장박치기로 하거나, 초장양념을 털어넣고, 오이를 어슷썰기하거나 양파를 숭덩숭덩 썰고, 매운고추도 넣어 버무려 매콤하게 먹으며 여름전어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엄마는 가을이 시작되면 선소에서 손질하지 않은 온전한 전어를 사와 대가리와 몸통은 구이로, 전어밤은 굵은 소금을 뿌리고 삭혀 밤젓을 만들어 조금씩 꺼내어 고춧가루, 땡초, 남해마늘을 넣고 버무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활용했다.
어릴 적, 우리 4남매는 큰 콧구멍을 틀어 막았지만 이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어 마니아가 되었다.
엄마는 우리 할아버지를 시아버님 또는 아버님이라 지칭하지 않고, `너그 할아버지~~`라고 말문을 텄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우리가 할아버지인냥 `아버님~ 이럴까요? 저럴까요?` 난 엄마도 콧소리를 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너그 할아버지는 가을이면 꼭 전어를 사 오셔서 가을전어는 대가리에 깨가 서말이 들었네~"라며 전어머리부터 꼭꼭 씹어 잡수셨다고 엄마는 할아버지처럼 가을전어 예찬을 하셨다.
여름이 등에 업은 가을을 살포시 떨어뜨렸다. 바야흐로 가을전어의 철이 되었다. 제 몸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구우면 아주 고소해진다. 남해를 떠나려는 청년들의 발길을 잡고, 남해를 떠난 청년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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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오 2020-09-27 10:03:03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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