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내린 여름날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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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내린 여름날의 야망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11 11:59
  • 호수 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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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55│碧松 감충효
망운산에서 본 읍내.
망운산에서 본 읍내.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간밤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대충 챙겨 뒷산을 오른다. 밤부터 쏟아진 비에 폭포는 황토물을 내리  퍼붓는다. 문득 고향의 봉천이 달려온다. 폭포는 봉천의 용왕바위에서 강진바다로 내리쏟는 물굽이와 흡사했다. 여름날 홍수가 나면 봉천의 급류와 소용돌이는 굉음을 내며 강진바다로 내닫는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떠내려오는 통나무나 드럼통을 잡아타고 놀다가 집으로 굴려온다. 어떤 때는 헛간 지붕도 떠내려 오는데 그 지붕위에는 물에 젖은 닭들이 앉아 있기도 하였다. 구해주고 싶어도 물살이 너무 거세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가 나 물결이 무섭게 요동치는 봉천에서 개구쟁이 죽마고우들은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십오 소년 표류기」 의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소설에서는 무인도에서 2년을 지내지만 강진바다 무인도 쇠섬에서는 하룻밤만 지내기로 했다.
죽산마을의 상징인 대는 뗏목의 밑창이 되고 삿대가 된다. 뗏목을 엮을 새끼줄이 모자라면 동미산의 칡넝쿨로 보충한다.

쇠섬.
쇠섬.

이윽고 뗏목은 요동치는 봉천의 급류를 타고 강진바다로 내려간다. 뗏목에 위험이 닥쳤다. 조류가 바뀌며 뗏목이 쇠섬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심이 깊어지니 삿대도 해저에 못 미친다. 무인도에서 더 멀어지기 전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개구쟁이들은 뗏목을 버리고 무인도까지 헤엄쳐가기로 했다.
봉천 용왕바위 냇물을 거슬러 올라 세월교까지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신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힘이 빠지면 배영으로 휴식을 취해가며 쇠섬까지 헤엄쳐 나왔을 때 허리에 찬 비상 식품을 버리거나 분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쇠섬의 동굴에 감춰놓은 취사도구에 석간수를 받아 밥을 짓는다. 섬에 지천인 굴, 바지락과 석장에 갇힌 도다리로 끓인 매운탕은 오랜 수영 끝의 저체온을 해결한다.
이렇게 우리들이 「십오 소년 표류기」 놀이로 낮과 밤을 지낼 때 동네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빈 뗏목만 선소항에 떠밀려왔으니 모두가 어떤 결론을 내렸겠는가.
(그 후 봉천 하구에서부터 강진바다로 간척이 되어 쇠섬과는 많이 가까워졌으나 그 당시는 토촌에서 건너가는 다리도 없었고 봉천하구에서 해수면 직선거리로 2km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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