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추석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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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조심 추석 대목장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9.18 17:01
  • 호수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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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가는 날이 장날이다. 남해의 끄트머리 미조면에 보름장이 열렸다. 정해놓은 장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바다를 간판 삼아 긴 도로 가에 자리경쟁없이 모자, 속옷, 도너츠, 냄비, 그릇, 이불, 채소 등 겹치지 않게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전이 펼쳐졌다. 구름이 놀다 간 파란 하늘과 녹음이 짙은 앞산, 방금 세수하고 나온 듯한 말간 햇살, 알록달록한 파라솔까지 보름장을 환영했다. <미조장은 1일, 16일이 선다>
엄마는 설, 추석 대목이 되면 1년에 두 번 남해읍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손바닥만한 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녹두나 콩으로 기른 숙주나물, 콩나물 몇 동이, 키를 나란히 맞춘 부추나 깻잎, 도매상에서 사와 물에 우려 연필칼로 낱낱이 가늘게 찢은 도라지 따위였다. 늘 하던 장사가 아니어서 명절 전전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시장으로 나가 밤새 뜬눈으로 자리를 잡고 새벽부터 손님을 맞이했다.
아침이 밝아오면 엄마가 드실 아침 도시락을 싸서 시장으로 나갔다. 어느 날엔 언니가 어느 해엔 내가…
"엄마, 이거빼끼 몬 폴아여? 본전은 찾긋는가. 내가 폴아 보낀께 일단 밥부터 묵어여."
"뭐이 걱정이고, 남으모 집에 가~가서(가지고 가서) 우리 묵으모 되제."
"누가 그걸 모리능가.
무거븐거 가~가기 싫어 그렇제."
밤새 배곯은 엄마가 바삐 숟가락 질을 하는 동안 내가 팔기 시작하면 비닐 봉다리 벌리기가 바쁘다. 대목장사는 알고 나면 쉽다. 요즘은 만들어진 상차림을 주문하는 시대지만, 그때는 조상님들께 올리는 것이라 흥정도 안 하고, 값이 평소보다 비싸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 장사 노하우는 콩나물 한 줌 더 주는 것.<엄마는 모른다.ㅎ>
장사해서 번 돈으로 우리들 운동화 사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재료를 사서 집에 오면 엄마는 업어가도 모르게 잤다. 그때는 엄마도 젊을 때라 늘 잠이 부족했을텐데…
대목장의 통로를 지나려면 몸을 돌려 어깨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지나고, `짐이요!` 하며 짐을 가득 실은 손수레라도 만나면 숨까지 멈추고 배를 집어넣어야 했다.
올해 대목장은 코로나19로 조심조심 전통시장이 될 것 같다. 장보기의 기본인 마스크를 쓰고, 화전화폐를 들고 시장으로 나가보자. 고향에 오지 못하는 가족, 친지에게 내 고향 특산물을 보내주자. 모린쓰대(마른서대), 모린낭태(마른양태), 문어, 호박, 가지를 담아 고향의 맛을 전해보자.

* 내가 시장에서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면 이불장사를 하고 싶다. 이불 사장님 어찌나 편하게 누워 계시는지 사장님이 파는 이불은 자장가를 불러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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