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악·영상 어우러진 문학강연, 아름다운 남해 담다
상태바
시·음악·영상 어우러진 문학강연, 아름다운 남해 담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0.22 11:00
  • 호수 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시인 이처기 선생 특강
16일 열려
유배문학관 상주작가 강의
프로그램
강연 말미에 이처기 선생이 청중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강연 말미에 이처기 선생이 청중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남해의 시조시인 이처기 선생이 지난 16일 유배문학관에서 `사향과 남해문학`이라는 주제로 문학강연을 했다.
남해의 시조시인 이처기 선생이 지난 16일 유배문학관에서 `사향과 남해문학`이라는 주제로 문학강연을 했다.

 "산 강 바람도 만나보았다./더 그리운 건 사람이었다./정이었다." (이처기)

 이처기 선생은 강연 첫머리를 이 시구(詩句)로 시작했다. 선생은 여기에 말하려는 바가 다 담겨 있다며, 2시간 강연 내내 고향의 자연과 사람을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정을 이야기하고 노래했다. 

 지난 16일 시조시인 이처기 선생의 특별문학강연이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렸다. 2020문학관 상주작가 강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된 이 강연에는 이처기 선생의 시조를 사랑하는 군민과 상주작가, 문학인들이 참석했다. 

 `사향(思鄕)과 남해문학`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은 전반부에서는 `사향`이라는 소주제로 고향 남해의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를 음악과 시낭송, 영상으로 들려줬다. 후반부에서는 시조 작품 몇 편을 들어 문학의 본질, 문학인의 마음가짐, 작가로서 살아가는 방법 등을 이야기했다. 가을 서정 넘쳤던 강연 현장을 따라가 본다.   
 
나의 존재를 노래하다-`백서의 시`
 이처기 선생은 자신의 시집 룗화진포연가룘에 수록된 `백서(白書)의 시`를 "내 삶이 압축된 작은 누드화, 그리움이 담긴 고향"이라고 지칭한다. 그는 이 시를 읽고 해설과 함께 가곡 `고향의 노래`(이수인 곡)를 들려주었다.

 청중들은 선생의 시와 함께 "망운산 아래 깜박이는 장명등"과 "굽이진 능선 따라 걸으며 흙먼지 묻은 손으로 흙밥 먹던 언덕에 불던 하늬바람", "강진해 남풍 부는 날"을 그려내는 듯했다. 이처기 선생은 "여드름 돋던 연분홍 얼굴과 분이가 입은 푸새한 옥색치마의 하얀 미감"과 같은 이미지들에 이끌려 자신이 미술교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산과 바다, 하늘과 구름 망운산 느릅나무, 강진해 물결, 갈화리 동산에 서서 황 부잣집 초상을 알리던 이장 목소리, 이른 새벽 남해읍 사거리에서 시발하던 남흥여객 버스에서 나는 휘발유 냄새와 굉음 …, 그가 만난 자연과 사람 모두가 그에게는 신이 준 선물이다. 

 시의 말미에서 선생은 "낯설은/신발로 딛는/미완의 걸음이여"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아직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비포장도로를 걸어가며 미완의 세계에서 답보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설렘,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
 시인은 8·15 해방 후 7~8세 유년 시절 장티푸스가 창궐해 죽을 고비를 넘기던 그 즈음 "대청마루 할머니 품에 안겨 기저귀를 찬 채로 보던 하늘과 흰 구름"(`기저귀`)을 기억하고 "화려한 소문만 듣고 도시로 간, 눈물 고인 보조개 아래 먹점이 선명한 순이, 그녀는 지금도 안녕한가"라고 묻는다(`순이`).

 25년 전 쓴 시 `매물도`에서는 통영에서 배 타고 가본 소매물도 바위섬들과 백갈매기, 까마득히 떠내려간 젖은 달력종이, 달력날짜에 동그라미 치고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또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사모의 노래 `어머니`를 부르며 "구순을 넘어서 일어나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망극한 정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고도 말한다.
 
보물섬 팔백리 바래길을 걷다
 시인은 시 `남해찬가`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줬다. 청중은 `남해찬가` 영상을 통해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를 걷고 구두산 양모리학교를 둘러보고 대국산성을 바라본다. 노량부두 윗자락 자암 김구 선생 유허비에 절 드리고 충렬사를 참배하고 난중일기를 읽는다. 고현면 탑동을 돌아보며 고려대장경 경판 모서리를 찾아보고 읍시장 봉정식당에서 물메기 국을 먹고 피로를 푼다. 유배문학관에서 유배문인들을 만나고, 서면 스포츠파크 한가운데 서있는 문신수 선생의 비문을 읽는다. 망운산에서 강진만을 내려다보고 호구산 용문사 줄기와 금산 자락을 본다. 남면 가천 암수바위와 다랭이 논을 맞이하고 상주 양아리 산기슭 암각화 서불과차를 보러 발길을 돌린다. 상주 은모래의 감미로운 감촉을 느끼고 가인포 은점을 지나는 굽이진 해안도로를 지나 물건항 방조어부림에서 천년의 속삭임을 듣는다.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창선삼천포 대교를 걸으며 "남해 시골이발소 김씨는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팔백리 바래길 여정을 마친다.  
 
"한국문학의 뿌리는 시조"
 이처기 선생은 시조는 우리 민족의 신명을 나타내는 내재율이 있는 정형시로 "한국문학의 뿌리"임을 강조했다. 또 "노도 문학의 섬은 남해의 자산이며 남해유배문학은 남해의 유적, 민간신앙, 효행 풍습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 한국문학의 원류인 시조문학을 전승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시인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나만의 개성을 지녀야 한다. 설렘으로 살아야 한다. 메모광이 되어야 한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 시인은 행동하지 않는 아나키스트, 자유인이다"라며 강연을 맺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