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TV중계소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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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TV중계소 준공식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0.22 11:26
  • 호수 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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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기록이야기 30 │ 이미숙 남해군 기록연구사
이 미 숙  남해군 기록연구사
이 미 숙
남해군 기록연구사

 오래된 사진 정리를 하다 보면 유독 눈길이 가 시간을 멈추게 하는 사진들이 나온다. 이번주 우리군 기록이야기로 선택한 것은 `국영텔레비젼중계소 준공식`이라는 시청각기록물이다. 

 준영구 이상의 다양한 중요기록물은 국가기록원에 이관해 보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곳곳의 시대별 정보들이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 archives.go.kr)를 통해 제공되고 있으니 한번 방문해보면 토지 관련 지적 아카이브, 일제강점기 기록물, 5·18기록물, 독립운동판결문 이외에도 볼거리, 읽을거리가 참 많다.

 1971년 4월 14일 촬영된 `남해군TV중계소` 준공 관련 사진들을 살펴보자. 요즈음의 어느 준공식이나 개소식 단상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아마 1970년대 당시로는 상당하게 꾸며서 진행된 식일 것이다. 본부석 중심으로 만국기가 걸려있는 모습이 그날의 잔치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여기가 남해가 맞아?"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관중이 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산을 쓴 관중들의 모습을 보니 날씨가 궂었던 날이었음에도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모였다. 엄청나게 기쁜 날이었거나, 신기한 날이었거나, 기다리던 날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사진기록물을 통해 그 시대를 짐작해본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다. 먼저 단상 위에 있는 관계자들의 수와 모습이다. 표정들에서 의연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면 단상 위에 앉은 자신의 모습에 너무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2020년 요즘의 준공식, 개소식 등의 행사에는 단상을 찾기 힘들다. 참가하는 모든 이가 한 방향, 다시 말해 무대방향을 보고 앉는 요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관중들과 같이 앉아 있다가 인사말순서에 잠깐 올라가는 요즘과는 달리 참 많은 이들이 단상 위에 관중을 마주 보고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그 시대가 얼마나 관료적이며 위상을 중시 여겼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진은 보는 이들의 경험치가 다르고 추억의 강약이 다르므로 개인차에 따라 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모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축하공연 사진들은 그 날의 흥을 전해주는 듯하다. KBS-TV 중계소 준공을 축하하는 자리인지라 꽤 인기 있는 유명인이 등장한 듯하다. 흑백사진이지만 옷의 모양이나 무늬가 또 머리 모양이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아도 분명 남달라 보인다. 무대 앞은 물론이고 옆으로 옹기종기 서고 앉은 관중들에게는 상당한 볼거리였음에 틀림없다.

 1970년대 국영텔레비젼과 관련된 또 다른 기록물들에는, 1970년 12월 국영TV중계소 9개소를 신설하는데 필요한 경비가 그 당시 1억하고도 700만원이 기정예산이었지만 시공설계 결과 부족한 4천400만원을 예비비에서 충당한다는 `국무회의 문서`가 있다. 방송통신 관련 기술과 장비는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은 경비가 든다. `TV방송사업운영에관한 조치법`에는 법령위반 수입품·생산품, 미신 조장하는 것, 과대평가하는 것, 타인 또는 타상품을 배척·중상하는 것들은 광고방송을 못하도록 의결한 문서(1970. 5.)도 있다. TV수상기등록신청서에는 시청목적과 수상기 제작회사를 기록하게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수신시청료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972년 2월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보낸 문서에는 진주성 안에 있는 KBS중계소를 성 밖으로 이설해 달라는 건의공문도 있다.

 옛 기록들은 군민들의 추억이 되고 아기자기한 기억들을 되살려 줄 거리가 되어준다. 고마운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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