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와 남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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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와 남해각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1.06 11:59
  • 호수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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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내 나이보다 연식이 오래 된 남해대교와 남해각을 빼놓고 보물섬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1973년에 개통된 동양 최대의 현수교는 남해대교는 남해사람들에게 `문`으로 통한다. 객지로 나가는 문, 남해로 돌아오는 문. 섬에 살던 사람들은 청운의 꿈을 품고 다리를 건너고, 뭍의 신기하고 편리한 물자들을 섬 속으로 들여왔다. 1977년생인 내 또래의 친구들은 스무살이 되어 객지에 있는 학교입학이나 회사에 취직하길 희망했다. 일명, 대교 탈출을 꿈 꾼 셈이다.
1996년, 남해의 유일한 전문대학에서 신입생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나는 대교 탈출에 성공했다.
남흥여객 버스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데쯤 오네", "남해대교 지나고 있어요" 또는 "남해대교가 보여요" 하면 엄마는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가늠해서 따순 밥을 지었다. 뿌리부터 촌사람인 나는 도시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남해대교를 통해 남해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떠나고 나는 남해에 남아서 친구들이 남해로 내려오면, "오데쯤 오네", "남해대교 쫌 못 왔다" 또는 "남해대교 지나고 있다" 하면 나는 도착시간을 가늠해 읍내 터미널로 친구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남해대교의 추억은 많았다. 한해는 교과서에 빨강색 남해대교가 실려 있어 자부심이 생겼고, 봄이 되면 벚꽃과 함께 손님들로 노량에서부터 경제 활성화가 되던 곳. 국가기록원의 남해대교 개통식 영상을 보면 당시의 대통령과 내로라하는 인물들, 하늘에 매달린 다리를 구경하려는 10만 인파가 몰려 다리공사를 한 일본 기술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는 추억의 다리이자, 섬을 육지로 만들어 준 다리다.

남해대교를 가까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해태에서는 남해각을 설계하고 건축했다. 남해각은 남해대교를 그대로 품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 보면 더 감동적인 남해각. 건물 벽체를 받치는 외곽의 곡선과 거기에 조각된 양각은 남해대교의 현수교를 꼭 닮았다.
1973년 6월 1일 개통된 남해대교는 섬 생활의 고난이나 척박함을 잊고 살게 해 준 역사물이다. 남해사람들은 집집마다 남해대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남해각의 말, 남해각의 해태상, 남해대교의 빨강문. 노랑저고리, 빨강치마를 입고 간 신혼여행, 친구들과 수학여행, 남해대교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넣었다.
남해경제 활성화와 남해의 부국을 꿈꾸게 하던 남해대교와 남해각. 창선삼천포대교와 노량대교의 개통으로 남해대교는 이용이 줄어들고, 남해각은 유휴공간으로 남았다. 기억에 잊혀진 남해각의 부활이 시작된다. 도심분위기, 세련미, 현대물자를 느끼기 위해 찾아가던 남해각은 재생으로 추억전시, 전망, 강연, 작품전시로 남해대교에 대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남해각은 철거보다 재생을 기획하고 역사를 복원했다. 남해군 재생사업 1호다. 남해각을 보존하기 위해 기획, 전시, 건축, 재생에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 에너지가 한데 모여 우리 남해는 자연친화, 여행, 힐링, 청년친화를 넘은 복합예술의 도시가 될 것이다. 남해각은 잘 나가던 그 시절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전시관엔 아련한 남해대교 주제영상이 흐르고, 벽면은 너덜거리던 벽지 그대로 파운데이션도 바르지 않았다. 남해각은 쌩얼이 진리다.
여러분의 남해대교와 남해각은 어떤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게 하나요?

※ 남해각은 11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개관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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