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을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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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가을운동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1.10 14:35
  • 호수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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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나에겐 남해국민학교 동문인 엄마와 남해초등학교 동문인 아이 둘이 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은 격일 등교, 1주에 2회 등교, 온라인 등교를 마치고, 전면 등교한 지 3주차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과 안전등급이 낮아 허물어버린 남해초는 여러 해 운동회를 치르지 못해 쓸쓸한 가을로 기억될 거 같다.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중반, 나의 국민학생 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 넓은 운동장에서 태양을 머리에 이고 운동회 연습이 시작되었다. 학년별로 팀을 청백으로 가르고, 줄줄이 출발해 운동장에 줄 서는 연습과 다시 돌아와 스탠드에 반별로 앉는 연습을 했다. 반 전체의 학생 모두는 백미터 달리기를 해 그중 빠른 학생을 릴레이 선수로 선발하고, 큰 깃발을 흔드는 응원단장 지휘 아래 서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불렀다.
`이 세상에 청팀 없으면 무슨 재미로, 해가 떠도 청팀, 달이 떠도 청팀, 청팀이 최고야. 아니야, 아니야 백팀이 최고야` 요즘 말로 라임이 똑똑 떨어지는 멋진 응원가다. 같은 팀이 아니면 고무줄놀이도 같이하지 않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이 부채로 만들어내던 파도타기는 바다를 연상하게 했고, 가운데 모여 만드는 꽃봉오리들은 운동장을 꽃밭으로 만들어 주었다. 교실에선 티격태격 싸워도 매스게임은 아이들의 협동심과 단결심을 뽐내는 자리였다. 공부보다 더 열심히 운동회 연습을 하고, 학생들은 운동회 총연습으로 몸살을 앓았다.
총연습이 끝나면 운동회라 마을청년회는 가을걷이가 끝나기 무섭게 바빠졌다. 마을이름이 크게 인쇄된 천막과 바닥에 깔 갑바를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싣고 학교로 가 운동장 트랙 밖으로 천막을 쳤다. 운동회 날 아침이 되면 아이들은 깨끗하게 씻은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만국기가 펄럭이던 학교로 갔다.
하얀 반팔티, 감색반바지 차림 운동복은 바지 옆단에 청군은 파랑색, 백군은 하얀색 줄무늬가 있었다. 언니오빠에게 백군 옷을 물려받은 친구는 하필이면 청군이 되어 파랑색 크레파스를 칠해서 입고 나타나고, 바지고무줄이 늘어난 친구는 바지를 잡고 달리기를 했다.
가을운동회는 줄서기로부터 시작된다. 체육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각자의 자리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큰공굴리기는 친구끼리 합심해 공을 굴리고 달려가 반환점을 돌아오는 것인데, 달리기가 늦은 친구는 공에 손도 못 대고 뛰기만 해도 숨이 가빴다. 백미터 달리기는 예닐곱 명씩 줄을 세워두고 화약총 소리에 맞춰 쏜살같이 뛰어나가고 결승선에 들어온 순서대로 1, 2, 3등은 부상으로 공책을 받았다.
나는 긴 다리에 비해 달리기를 못했고 공책을 못 받으니 키 아깝다며 엄마의 한탄을 들어야 했다. 기마전은 세 명이 팔을 포개어 잡고 체구가 작고 가벼운 한 명을 앉혀 상대를 먼저 무너뜨리면 이기는 경기지만, 키가 컸던 나는 여기서도 기수 한 번 하지 못했다.
운동회의 백미는 역시 릴레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과 선생님도 출전하고, 부모님도 함께 뛰고 스탠드의 박수부대인 나는 목이 터져라 응원만 했다. 그때 운동회는 학생들과 동네주민이 함께 하는 잔치였다. 학교 운동회를 한다면 학생이 있는 집, 학생이 없는 집 가릴 것 없이 모두 운동장으로 모였다. 커다란 찬합에 농사지은 찹쌀과 팥, 밤을 조각내어 찰밥을 하고, 김밥을 싸고, 계란을 삶고, 밤을 쪘다. 청년회에서 천막으로 만든 그늘아래서 점심을 먹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궁뎅이를 붙이고 앉아 각자 만들어 온 음식을 찬합뚜껑에 담아 어깨 너머로 나눠먹던 정겨움이란.
얼마 전, 상주중학교의 가을운동회 소식을 SNS를 통해 접했다. 솔숲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군데군데 무리지어 응원을 하고, 불끈 힘주어 줄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한데모여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만들어 도는 대동놀이는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의 힘찬 응원, 아이들이 있어 빛나는 학교 운동장. 우리 언제 또 이런 가을운동회를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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