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산리 방화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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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산리 방화사건의 전말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1.16 14:07
  • 호수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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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작은마을. 나즈막한 산과 가까운 갱번이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가구수가 많은 본 마을과 떨어져 살던 우리 이웃은 다섯 가구였는데, 세 가구에 고만고만한 아이만 여덟이었다.
우리집 4남매, 담장너머 앞집은 할머니가 키우는 손자 한명, 스무걸음이면 갈 수 있는 한 다리 건너 이웃엔 삼형제. 그 중 골목대장은 나와 연년생인 울언니였다. 체급으론 내가 대장이었으나 나이에서 밀렸다. 여덟 모두 합쳐 연년생이거나 동갑 아니면 한두 살 터울이었던 우리들은 싸우면서도 화해가 빨라 한데 모여 놀았다. 엄마들은 논밭일로 바쁘고 이웃끼리 품앗이로 농사를 지었다. 그때는 취학하기도 전에 벌써 밥을 차려 먹고 도시락을 싸들고 놀러 다녔다. 엄마를 졸라 도시락을 싸주라는 귀찮은 요구는 하지 않는다.
찬장에서 꺼낸 찬합에 밥을 담고, 아침에 먹던 반찬그릇을 뒤져 도시락을 싸서 산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송진이 날리는 봄에도 황사가 몰려와도 우리의 소풍은 비소식이 있기 전까지는 계속됐다. 때는 바야흐로 습기가 몸을 감춘 봄날, 산속에서의 전쟁놀이는 계속됐다. 솔방울은 수류탄이 되고, 생긴대로 부러진 나뭇가지는 총칼로 사용됐으며, 바위에 나무를 걸쳐 넣고 집에서부터 가져와 나락포대로 막으면 방공호가 되어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군도 적군도 없고, 수류탄을 맞아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며, 안 맞았다고 우기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차산리 전투였다. 나뭇가지와 솔방울로 놀던 우리에게 신문물을 선보였던 건 내 바로 아래 남동생이었다. 어디서 화약총을 구해온 것이었다.

"내 총을 받아라, 공격! 딱딱! 딱딱!" 산이 떠들썩하게 전쟁놀이 중 화약이 큰일을 냈다. 마른갈비에 불이 붙어 방화를 저지르고 말았다. 동네사람들과 소방차가 출동해 간신히 불길을 잡았다. 1차 방화사건.
옛날 시골집은 집집마다 군불때는 아궁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쇠죽을 끓이거나 식구들이 씻을 더운물을 지피는 데 사용했다. 소나무에서 떨어진 갈비를 긁어모아 불싸리개로 썼는데, 부지런한 엄마덕에 우리집은 잘 맞춰 놓은 레고처럼 갈비더미가 쌓여있었다. 남동생 눈에 띈 성냥. 어른들이 촤악~ 한번 그으면 화약냄새를 내며 몸에 불이 나는 성냥을 보고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그냥 지나칠 리 없지. 성냥을 그었다. 조금씩 성냥개비를 태우던 불이성냥을 쥔 손끝에 가까이 오자 화들짝 놀란 남동생은 불이 붙은 성냥을 갈비더미 위에 놓치고 말았다. 마를대로 마른 갈비는 화르르, 부모님의 외출 중에 일어난 일이라 이웃집 삼촌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때마침 고향집을 방문했던 작은아버지가 불길을 제압했다. 초가삼간 태워 먹을뻔한 2차 방화사건.
산불방화 이후 입산이 금지된 우리들은 서로 한두 해 차이로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까막눈들이 서서히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과자봉지의 내용물을 똑같이 나누게 되었을 즈음 하굣길에 남동생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동생이 학교복도에서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선생님께서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 레바를 누르면 분말이 나와 불을 끌 수 있다고 소화기 사용법을 교육했단다. 쉽게 불끄는 기구가 있는데 우린 불 끄느라 양동이로 물을 부었으니 진짜일까 궁금했던 남동생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눌러 소화기 분말들이 복도에서 춤을 췄다는 사실. 그때의 방화때문인지 남동생은 담배조차도 멀리하고 있다.
불은 자칫 한 번의 실수로 길이 길이 보존해 온 국보급 문화재가 소실될 수 있고, 잘 가꿔온 우리의 금수강산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까운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불이다.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커피향을 날릴 때면 어릴 적 구호가 생각난다.
"꺼진불도 다시보자"

※ 잘 가꾸어 온 산림보호에 산불감시원, 산불진화대원 여러분 수고많으십니다. 생명안전에 힘쓰시는 소방관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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