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탄고도 설경도 잠깐… 눈물 졌던 청령포
상태바
운탄고도 설경도 잠깐… 눈물 졌던 청령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1.16 14:18
  • 호수 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고향, 나의 삶 63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중국차 티벳 말이 차마고도 길을 내듯
석탄은 한국 땅에 운탄고도 그었구나.
정선과 태백 영월의 석탄산업 보고여!

우리네 연탄 한 장 뜨거웠던 전설이여!
밤새워 등 따숩던 네 온기에 고마웠고
새벽녘 탄을 갈면서 기도 같은 그 무엇.

탄차는 어디가고 백설만 길게 뻗어
설화 핀 자작나무 능선위에 올려놓고
그 능선 하늘 맞닿아 어디까지 뻗었나?

정선과 태백 지나 영월 땅에 들어서니
청령포 단종애사 창천에 걸렸구나
찬탈의 멍에 쓴 자여 피의 역사 보느냐? 

단종이 쌓은 돌탑 서낭당이 되었구나
그 돌탑 돌 얹다가 관음송 걸터앉아
한양 땅 정순왕후를 못내 그려 하시더라.
 

〓 詩作노트 〓
재경 향우님과의 2018년도 2월 정기산행은 강원도 정선, 태백, 영월을 잇는 운탄고도의 등정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청령포를 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원도 정선과 태백, 영월 일대의 산악지대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길을 사람들은 운탄고도(運炭古道)라 부릅니다. 함백산(1572m), 백운산(142m) 두위봉(1466m) 7부 능선을 휘감아 도는 이 운탄고도는 1960~70년대에 석탄을 운반하던 탄차가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운탄고도의 전체 길이는 100km 정도이지만 정선에만 해도 80km가 넘는 구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구간에 있는 갱도를 막고 길을 다듬어 트래킹코스를 만드니 사람들은 산록 따라 펼쳐진 설원의 풍광을 보며 눈길을 헤쳐 걷는 재미에 이 추운 겨울에도 이곳을 찾아옵니다.

단종애사~
육지속의 섬을 향해 서강을 건넙니다. 단종 유배생활의 벗, 영월의 관음송이 클로즈업 됩니다. 600년 수령은 단종애사의 마지막까지를 후세에 전해줍니다. 숙부인 수양대군으로부터 왕위찬탈을 당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당하고 눈물과 비애, 그리움, 외로움 속에서 처소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에 걸터앉아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단종의 모습과 슬픈 말소리를 보고 듣고 했다 하여 `관음(觀音)`이란 이름이 이 소나무에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단종의 영혼이 깃든 관음송은 신령스러운 나무가 되어 후세의 역사에 남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관음송은 국가에 위난이 닥칠 때마다 조선솔 적송의 맑은 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청령포(사진)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에 새겼습니다. 비신은 비각에 보호되고 있는데 비(碑)의 뒷면에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은 청령포라고 썼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