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계단 담벼락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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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계단 담벼락에 기대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1.23 10:44
  • 호수 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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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64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반도 남단 남면 가천의 다랑이 마을에서는 거대한 담론이며 대자연에 대한 찬탄 같은 건 별로 필요치 않다. 고단한 삶이 걸린 백팔계단의 그 의미 앞에선 이런 것들은 한갓 사치일 뿐이다.
깊은 바닷물에 뿌리를 내린 설흘산 가파른 면벽 앞에서 먹을 것을 심어 가꿀 땅을 찾던 민초들은 그 가파른 절벽만큼이나 절박한 삶을 한층 두 층 그 면벽에 두르면서 흙의 문화를 만들어 갔다.
경사가 너무 심해 그대로는 씨앗을 뿌리기는커녕 걸어 다니기도 힘든 그 절벽 같은 곳에 주변에 널려있는 돌을 쌓아 수평의 땅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만 가두면 벼농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벼농사가 끝난 가을부터 봄까지의 보리농사는 물론 마늘과 시금치를 비롯한 채소농사도 이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이 가파른 산록에 돌담을 쌓아 다랑이 논이라는 수평의 땅을 만들고 그 조그마한 땅위에 또다시 담을 쌓아 누대에 걸쳐 백팔계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대에 못하면 아들 세대로 그도 아니면 손자 세대로 대물림 하며 내려간 이 생존의 역사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 규모로 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남면 가천 다랑이 논.
남면 가천 다랑이 논.

잉카문명 마추피추의 계단이나 구조물처럼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계단은 아니더라도 계단의 층수는 더 아득하고, 마츄피츄에 잉카제국의 문화가 서려있듯 이곳에는 미륵불의 도타운 전설과 설흘산 육조문의 불교문화와 밭 무덤 등 토속문화가 살아있고 국내에서는 제일이란 정평이 나있는 양석과 음석이 버티고 있는 해학을 지닌 마을이다.
마추피추를 본산으로 하는 잉카문명이 한때 중남미 대제국의 흔적이었으니 가천 다랑이 마을이 그 규모면에서 따라 갈 수 없지만 적어도 계단식 논을 백팔 층이나 쌓아 올린 것은 피땀 어린 또 다른 농경문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2008년도에 남해유배문학을 알리기 위해 중앙문단 문인 40여명을 남해로 안내하여 1박2일 동안 유배문학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도운 일이 있는데 그때도 이 다랑이 마을의 농경문화와 이를 통한 문학적 접근의 가능성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미력이나마 힘을 쏟았던 일이 있다.
또한 필자는 이곳에 올 적마다 이 피땀 어린 농경문화의 살아있는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면서 도타운 미륵문화에 한 편씩의 정형시를 써서 화답하였다. 지금까지 모두 여섯 편을 썼는데 어느 일간지에 실었던 희미한 기억의 한 편은 찾을 수 없다.
그때그때 중앙문예지, 지방문예지, 지방신문, 인터넷신문, 개인 시집에 남긴 다섯 편의 연작시를 통해 백팔계단 행간에 필자 또한 사념의 호롱불을 걸어본다. 지면관계상 몇 번에 걸쳐 다섯 편의 시조(정형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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