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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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판결 유감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01 14:10
  • 호수 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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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칼럼니스트 │ 이현숙
이현숙 │ 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 본지 칼럼니스트

온라인상에서 암약하던 `박사방`, `N번방`의 충격적인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 국민적 공분이 들끓었다. 성착취물 영상을 공유하려는 남성들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몰리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된 듯하다.
특히 수행에 전념해야 할 현직 승려가 회원 가입한 사실에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인간이 얼마나 말초적 본능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인지를 여실히 증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이 보도된 직후 관련 기록을 삭제해 준다는 가짜 대화방을 띄우자 문의가 쏟아졌다고 하니 인간의 이중적 면모마저 엿보인다.
`N번방`류의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세간의 호기심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데, 사실 이 같은 불법 음란 사이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게 된 배경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우선 IT산업의 발달에 따른 반작용일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기성세대의 성에 관한 왜곡된 인식과 그릇된 행동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본이 되지 못한 결과라 본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성추문에 연루되어 명예와 권력은 물론 목숨까지 내려놓은 주요 지자체 수장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지켜보았다.

 

피해자들의 피눈물 나는 호소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절대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들이 자행한 범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므로 솜방망이 처벌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야말로 언젠가 이 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을 때 이들이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돕는 길이다.

건전한 성의식의 부재는 성차별적 상황을 판단하는 민감성을 저하시킨다. 반면에 소아성애, 성도착증, 관음증, 가학증 같은 성적 일탈 심리를 부추긴다. 각종 음란물이 성행하는 이유이다. 흥분제나 성매매를 광고하는 스팸메일도 그 연장선이다. 그나마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심각성을 함께 고발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일반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점은 다행스럽다.
불법 영상물 유통에 이용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은 IP(인터넷 주소) 추적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된 끝에 이달 들어 해당 사이트의 운영자, 협조자, 회원에 대한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잇달아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양형 이유를 보니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영상을 구입한 뒤 유포하지 않은 점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아동 성착취물 영상을 소지하기만 해도 5년형 이상에 처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관대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박사방`, `N번방`의 원조격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에 내려진 판결 또한 유감스럽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는 음란물 유통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가 형기 만료를 앞두고 미국 법무부의 송환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아들의 송환을 막기 위해 아버지가 자식을 범죄수익은닉혐의로 고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결국 미국 송환이 불허되어 국내에서 수사가 이루어졌고,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되었다.
피해자들의 피눈물 나는 호소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절대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들이 자행한 범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므로 솜방망이 처벌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야말로 언젠가 이 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을 때 이들이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돕는 길이다.
IT강국의 딜레마로 치부하더라도 `N번방` 사건은 너무 혹독한 대가임에 분명하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N번방` 대신 지역별로 사랑방 같은 편안한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여 차담회라도 활성화하면 좋겠다. 물론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서 논의해볼 만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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