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김정한 문학 꽃핀 남해, 문화관광 명소로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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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김정한 문학 꽃핀 남해, 문화관광 명소로 가꾸자"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2.14 17:23
  • 호수 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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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강달수 사하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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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시인, 2020년 김만중문학상 특별상 수상
향우회·문단활동으로 남해 문학과 지역 알리기에 공헌
지난달 7일 열린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강달수 사하문인협회 회장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난달 7일 열린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강달수 사하문인협회 회장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제11회 김만중문학상 특별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문인협회 활동을 비롯해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나 = 남해출신 문인 모임인 화전문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부산사하문인협회장과 (사)부산광역시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시자이고 국내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자갈치 아지매`를 기획·연출한 김민부 시인을 기리는 김민부문학제와 김민부문학상을 기획·제정해 올해까지 각 10회와 6회 실시했다.
 남해와 김만중 선생에 관한 활동으로는, 부산시인협회 사무국장과 이사로 재직 중에 2차례 여름시인학교의 남해 개최를 주도했다. 김만중 선생의 남해에서의 흔적과 그 문학적 가치를 역설했다. 또 남해로 문학기행을 가는 단체들에는 수십 차례 안내와 홍보를 자청했다. 2015년에는 부산사하구의회의 정기 의정 연수를 남해에서 하도록 주도하고 남해 관광명소와 특산물을 홍보했다. 향우회 활동과 문단활동을 통해 남해에 대한 시를 각종 문학지와 언론에 발표했다. 김정한 선생의 유일한 애정소설인 룗월광한룘의 공간적 배경이 다랭이마을이라고 잘못 알려진 것을 남면 서상이라고 바로잡은 일이 제일 기억에 남고 보람으로 생각한다.

2019년 가을문학기행 당시 김정한 선생의 룗낙일홍룘의 배경인 남명초 앞에서(왼쪽 네 번째가 강달수 회장).
2019년 가을문학기행 당시 김정한 선생의 룗낙일홍룘의 배경인 남명초 앞에서(왼쪽 네 번째가 강달수 회장).

고향 남해에 대한 기억과 소회를 말씀해 달라 = 이동면에서 태어나 다초초등학교(현 이동초)를 졸업하고 이동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부산으로 전학했다. 그러니까 남해에서 15년 정도 살았고, 지금까지 부산에서 45년 넘게 살고 있다.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라는 말이 있다. 월나라, 즉 남쪽나라에서 온 새는 언제나 고향에 가까운 남쪽 가지에 깃들인다는 뜻으로, 그만큼 고향을 잊기 어려움을 뜻한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뛰놀던 고향이 소중하고,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과 함께 했던 모든 부분들이 다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해대교가 생겼다. 그 후 3년 뒤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아버지가 남해대교를 지날 때 펴보라시며 편지를 한 장 써주셨다. 안타깝게도 그 편지는 분실해 없지만, 뚜렷이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남해 사나이의 긍지로 절대 도회에 나가서도 기죽지 말고 반드시 성공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선지 지금도 고향을 방문할 때면 새로 생긴 노량대교보다는 남해대교를 이용한다. 붉은 남해대교에 진입할 때면 마음이 설레고 부모님 생각도 난다. 또 돌아오면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김정한 선생의 목비 등 남해 문인 발자취를 찾아 기리는 작업을 하신다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 요산 김정한 선생은 부산 동래 출신으로 일본서 학교를 다니다가 동래고등학교로 전학, 졸업했다. 그 후 초등학교 교사로 남해서 근무했다. 그 동안 단편소설 「사하촌」(1936)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조선일보에 「옥심이」(1936)와 「항진기」(1937)를 연재했다. 내가 요산문학제 추진위원일 때 회나뭇골이 요산 선생의 소설인 「회나무골 사람들」의 공간적 배경이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의 남변리 회나무 앞에 `요산문학의 현장`이라는 표지목을 남해출신 박윤규 시인과 함께 세웠다. 소설 서두에 읍내가 소상히 묘사되고 있다. 그 뒤 기념비가 나무이다 보니 풍상에 훼손되고 지금은 멸실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제 남해 각 마을의 표지석처럼 석재로 세워 영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해 지역사회와 문화와 관련한 발전방안이나 바람에 대해 말씀해 달라 = 구체적인 발전방안이나 바람은 세미나나 남해군과 협의할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유배문학관 등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만중 선생에 대한 스토리에, 요산 김정한 선생에 대한 스토리를 더한다면 남해군 전체와 남해읍이 문화와 문학의 메카로 부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남해군청과 남해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던 남해읍성의 지도를 복원하여 투어 코스를 개발하고, 인근 다천문화마을의 석사놀이, 국궁 제작 같은 남해 특유의 민속놀이 체험장을 설치한다면 더없는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끝으로 남해군민들에게 한말씀 = 국적과 학적은 변경할 수 있어도 고향은 결코 변경할 수 없다. 태어나 계속 남해에 살고 있어도 남해사람이고, 고향을 떠나 객지서 살아도 영원한 남해사람이다. 그런 만큼 출향인들이 혹 남해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고향분들은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출향인들도 타향에서 고향분들을 만나면 막걸리라도 한잔 대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향인들은 남해의 특산물들을 애용하고 홍보하고, 1년 중 여름휴가라도 보물섬을 찾는 등 고향 경제에 조금이라도 힘을 불어 넣어주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이번에 받은 특별상은 지금까지 내가 받은 어떤 상보다 값지고 의미 있다.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남해`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이 영광을, 3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께 바치며, 명예로운 수상 영광을 주신 군수님을 비롯한 남해군 관계자와 문학상 운영위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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