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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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촌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15 16:17
  • 호수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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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외조부께서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방황하는 나를 건축일을 배워 직업으로 하시라며 남해로 불러 내리셨다. 당시 외조부님은 매사 일 처리가 현명하고 단호해 주변의 신망이 두터웠으며 동네 어른들의 경외 대상이기도 하셨다.
당시 아버지의 부재로 삶의 무게를 느끼던 나에게 외조부의 존재는 주변에 "누구의 외손주입니다" 하는 당당함을 줬고, 저녁식사 후 TV 뉴스를 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아갈 길과 사람의 도리를 배웠다. 가정이 주는 안락함과 존경받는 가장이 만드는 당당함으로 자신감을 키워갈 때 외조부를 향한 존경의 마음은 커졌고, 외조부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일찍 귀가한 날은 할아버지와 동네를 산책했다. 어느 날 산책 중윗동네에서 점을 잘 보기로 유명한 도사와 마주쳤다. 도사는 할아버지에게 "형님 저녁은 드셨습니까?" 인사한 후 나를 보며 "동생은 어딜 가시는고?" 묻고는 갈 길을 가셨다. 도사를 보낸 후 할아버지께서 "허허, 용하다고 점 보러 서울서도 온다면서 조손지간을 형제로 만드니 점괘가 맞겠나?" 하시는데 웃음이 나왔다.
돌아보면 다른 지역보다 우리 남해는 유독 형님 아우를 많이 챙기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후배 아버지를 형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아 셋이 한 번에 만나는 경우는 평소 부르는 호칭 때문에 멋쩍은 일이 자주 생기곤 한다.
분명 더욱 확고한 인간관계 유지를 만드는 형님 아우의 호칭으로 간혹 겸연쩍은 일들이 발생해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만의 문화라 생각한다.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우리의 이상한 촌수가 예전에는 끈끈한 정에서 만들어졌다 느꼈지만 지금은 이해타산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욱 많아 보인다.
따뜻한 마음으로 부르는 형님 아우님이 어려운 이 시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리라 믿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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