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의 삶이 준 기억과 상처, 수필로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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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의 삶이 준 기억과 상처, 수필로 반추하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2.18 12:09
  • 호수 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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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수필반 최고령 황정희 씨
공동작품집 룗길 위에 水feel하다룘에 3편 발표
여든 평생 중 지금이 가장 건강하고 즐겁다는 황정희 씨. 글쓰기와 함께하는 그의 남해살이가 아름답다.
여든 평생 중 지금이 가장 건강하고 즐겁다는 황정희 씨. 글쓰기와 함께하는 그의 남해살이가 아름답다.

 화전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수필반 강사와 수강생의 공동 수필집 「남해섬 길 위에 水feel하다」(사진) 출판기념회와 낭송회가 지난달 24일 열렸다.
 지난 6월부터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 수필반 수업을 마치며 펴낸 이 수필집에는 강사진인 김희자, 임종욱, 김현근 작가와 수강생 16명의 글이 수록됐다. 지난 여섯 달 동안 수업을 듣고 글쓰기를 하며 그 결실로 수필집을 낸 이들 가운데 최고연장자이자 결석 한 번 없이 꼬박꼬박 도서관을 드나들며 글을 써온 황정희(77) 씨를 만나봤다. 노트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새겼을 3편의 수필 속 그의 실제 삶의 여정을 잠시 들여다본다.
 
`석양`
 황정희 씨는 이번 책에 자신의 수필 3편을 수록했다. 80년 가까운 삶의 여정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상처를 남해의 고운 석양을 바라보며 담담히 반추한 작품들이다. 
 황정희 씨는 2014년 성남 분당에서 삼동 동천으로 남편 안병상(81) 씨와 함께 귀촌했다. 슬하에 두 남매를 두었고 교사인 아들은 광주에 산다. 그리고 딸은 작품에 나오다시피 몇 년 전 그의 가슴에 묻었다. 5년간 이어진 딸의 투병을 돕기 위해 그 곁으로 이사를 하고 어린 손자들을 돌보고 살림을 살아줬다. "딸을 보내고 1년간은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요. 지금은 웃음이 꽉 찼어요. 일기 쓰는 제 모습이 보기 좋다며 격려해주던 딸 수진이가 이렇게 글 쓰는 제 모습을 가장 좋아할 거예요."
 서까래 있는 흙집 너른 마당에서 석양이 지는 금산 끝자락을 즐겨 바라본다는 황정희 씨는 이제 남해생활에도 어지간히 적응했다. 동네 사람들도 6년 정도 지나 서로 어려움을 알게 되니 마음을 연 이웃사촌이 됐다. 서로 형님동생 하며 호박부침개, 카레, 시금치 무침, 떡 같은 건 예사로 나눠먹는다. 동네형님들 얘기를 새나가지 않게 잘 들어주다 보니 카운슬러 아닌 카운슬러가 됐다는 귀띔도 한다. 그렇게 마을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
 황정희 씨에게 평생 남은 상처는 가정형편이 나쁜 것도 아닌데 중학교에 가지 못한 일이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쌀가게를 하셨다고 한다. 딸을 쌀가게에 앉혀 놓고 `색시놀음` 하던 아버지는 늘 원망의 대상이었고 4남매 중 엄마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아버지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후 내 삶이 즐거웠으니까 괜찮은데, 그때는 아버지가 참 힘드셨겠구나 싶어요." 그는 절대 부모가 되면 자식 싫어하는 일은 안 하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샌님 범생이` 같은 남편을 만났다.
 시골 출신 7남매의 장남을 만나 다섯 시누이와 시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60년대에 한국은행을 6년 다녔다. 이 사실은 힘든 시절 그를 버티게 해준 자긍심이기도 하다.
 글을 한참 쓰고 있던 올해 어느 날 밤, 남편이 그에게 물었다. "밤에 뭘 그렇게 써?" 별 거 아닌 이 말이 그의 상처를 탁 건드렸다. "순간 아픔이 건드려지면서 펑펑 울었어요. 그때 한번 풀린 것 같아요."
 
`미국기차여행`
 황정희 씨는 혼자 `바람처럼`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면 가족들도 훌훌 떨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남편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곰탕 끓여놓고 떠나기`도 가끔 즐기고 `너무 화가 나면 쪽지 한 장 달랑 남기고 훌쩍 떠난다`. 딸을 떠나보낼 때도 장례식 절차를 척척 지휘하고 나서 강릉 바다로 훌쩍 떠났다고. 낯선 곳에서 목 놓아 울고 정말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길에도 나앉아 봤고 딸 보낸 지도 3년이 됐어요. 이제 오롯이 내 시간이 됐고 책 보는 걸 좋아해서 화전도서관을 다녔고 작지만 공동수필집도 냈네요."
 일기 외에는 긴 글을 처음 써보는 거라 힘든 고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끝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막상 긴장에서 벗어나니 삶이 싱거워졌다는 그는 확실히 살면서 긴장이 있어야 활력도 생긴다며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여든 평생 지금만큼 건강하게 사는 게 처음이에요. 근심걱정이 사라졌어요. 기도하며 걸으며 지금처럼 건강하게 한결같이 살 거예요. 노인복지관에서 하모니카도 배우고 등산도 하고 도서관도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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