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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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이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1 12:10
  • 호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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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광장 │ 이현숙(본지 칼럼니스트)
이현숙본지 칼럼니스트
이현숙 본지 칼럼니스트

신종바이러스의 표적이 되어 명실상부 인류사에 고난의 해로 기록될 2020년 끝자락에 서니 왠지 모를 비감이 밀려든다. 항공·여행·숙박·유통업계의 줄도산, 오랜 전통 속에 탄탄대로를 달리던 기업들의 파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눈물, 이 모두 `코로나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세계 각국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국 봉쇄까지 감행한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국내 여건은 그나마 낫지만, 최근 신규확진자의 폭증세를 보면 두려움마저 엄습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초유의 조치는 종교 시설과 교육 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회는 때로 비대면 예배로써 신앙의 의무를 대신했고, 초·중·고·대 신입생들은 새 학교 첫 등교부터 곡절을 겪으면서 풋풋한 설렘과 추억을 반납했다. 허기를 못 이겨 달걀이나 라면을 도둑질하는 취약계층의 생계형 범죄도 증가했다. 이른바 현대판 장발장의 등장은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적 사례라 여겨진다. 고공 행진하는 집값과 전세난은 그야말로 쇼킹하다. 그 심리적 충격을 말로 표현하자면, 맨몸으로 초고층 아파트 옥상 위를 붕붕 나는 듯 아찔한 느낌이다. 살면서 거쳐야 할 인생수업 가운데 일종의 틈새 체험이라 스스로를 달래 본다.
정치판은 늘 그래왔듯 난장판을 방불케 한다.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공수처법이 작년 말 신속처리법안으로 처리된 바 있다. 그간 야당의 저지로 공수처 출범이 미루어졌다가 엊그제 야당의 비토권을 없앤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었다. 아직 시행 전이라 공수처의 효용성에 대해 섣불리 예단하기는 그렇다. 다만 후대가 역사를 평가할 때, 권력에 의해 법과 제도가 변질되었다는 얼룩을 남겨서는 안 되겠다.
하다 하다 이제는 철새까지 속을 썩인다. 전국 각지의 가금류 사육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죄 없는 오리·닭·메추리가 살처분되고 있다.
이 와중에 그들만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씁쓸한 사건 하나가 이목을 끈다. 강남 부자들의 딴 세상 이야기는 서울 청담동의 중고 명품 위탁판매업체 `라메종에이치`에서 시작된다.
해당 업체의 대표는 2014년부터 고가품 시계나 가방 등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고객의 신뢰를 악용하여 대부업체·은행·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가방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에게서 선금을 받고 잠적했다. 피해자가 100여 명에 피해 규모는 100억 원대이며, 개중에는 이혼을 당하거나 자살을 기도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현재 업체 대표는 입건되어 수사 중이고 매장은 폐업 상태이다.
예전 강남은 비만 오면 땅이 질척대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허허벌판 논밭이었다. 그곳이 개발의 날개를 달고 환골탈태하자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고층 빌딩과 고급 매장이 들어서더니 결국 이런 사단을 불러왔다.
어쩌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다. 물욕이 적정선을 넘는 순간 인간은 추해지고 만다. 값비싼 옷과 보석과 가방을 몸에 둘러야만 명품 인간이 되는 게 아닐진대, 대체 그게 뭐라고 남들만 가지면 질투하고 나만 가지면 우쭐해하는가. 사람이 물건을 부리지 못하고 물건의 노예가 된 격이다. 물건은 가격보다 실용성과 기능성이 중요하고 여기에 웬만큼 디자인이 받쳐 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최대 1억 원을 호가한다는 `강남` 매장의 에르메스 가방 한 개 값이면 `경남` 시골에서는 촌집 한 채도 장만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소득 분위별 구매력 격차는 천양지차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돈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비난할 근거는 없다. 다만 가난과 질병과 고독으로 신음하는 우리 이웃, 아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갈망하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묵은해가 다 가기 전에 한 번쯤 삶의 중간 점검이 필요할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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