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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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시간 위에서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1 12:15
  • 호수 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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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세이 │ 장현재(본지 칼럼니스트)
장현재본지 칼럼니스트
장현재 본지 칼럼니스트

경자년 12월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 팔랑거린다. 올 한 해는 참으로 우울한 해였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4개월 보름 동안 긴 장마가 이어져 농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고, 코로나19로 인해 긴 시간을 마스크와 함께하며 지금은 3차 대유행에 휩싸여 있다. 이로 인해 경제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는 말과 같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으로 그 끝이 보이려 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한 해를 보내며 가슴을 열어 보지만 정작 자신은 내놓을 게 없다. 연초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자고,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다짐은 어디에 갔을까? 애써 손 하나를 펼치면 뒤에 감춘 손은 언제나 변명을 쥐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만 부끄러울 뿐이다.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이다. 단지 사람이 기준을 정하여 돌아봄과 새로움을 갖게 하려는 의미일 뿐 연속성에 있다. 이제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 서서 한번 지나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과의 인연을 얼마나 소중히 했는지 물어본다.
불가에서 인연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 했다. 이런 인연도 영겁이라는 시간 선상에 있다. 이런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에 비교되는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다. 그는 5분의 의미를 평생 깨달음으로 간직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영하 50℃ 되는 어느 겨울,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가 기둥에 몸이 꽁꽁 묶인다. 그는 사형집행 예정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5분 정도였다.
지금까지 28년간을 살아왔지만, 그때의 5분은 천금처럼 귀중하게 여겨졌다. 그 소중한 5분을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결정한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 기도를 하는 데 2분을, 오늘까지 살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하고 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한 마디씩 작별 인사를 나누는 데 2분을, 그리고 나머지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금 최후의 순간까지 서 있게 해 준 땅에 감사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형장에 끌려온 동료들에게 한마디씩 인사하는 데 2분,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데 문득 3분 후에 갈 곳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해진다.
지난 28년간의 세월을 순간순간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한 후회와 뉘우침에 깊이 사로잡힌다. 이제 총에 탄환을 재는 소리가 들린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와 황제의 칙령이라며 사형을 중지하라 한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자유를 얻고 난 후부터 그 당시 최후의 5분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기로 다짐하고 시간을 금같이 소중하게 관리하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예지를 가지고 치열한 창작 활동에 매진한다. 그 결과 룗죄와 벌룘 룗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룘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다. 그는 5분의 경험을 소설에 투영된 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우리에게 깊이 있는 삶의 성찰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언제나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12월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하루하루의 길 위에서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생각해 보면 초라한 발자국만 남겨놓은 허무한 잔상만 떠오른다.
살아온 날들에 견주어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 측량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작은 것에 행복해하지 못했던 한 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다가올 시간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동안 지녀온 욕망과 미련의 잔가지를 내려놓고 흰 배추 줄기 같은 깨끗한 마음으로 가슴에 햇살이 피어오르는 온기의 미소로 12월의 남은 시간을 만져야 할 일이다.
비록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지만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무심히 지나가는 5분이 있지 않은지 5분조차 소중히 채우면서 후회하지 않는 한 해가 되는 알찬 마무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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