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최초 청동기시대 지석묘 발굴, 서대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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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최초 청동기시대 지석묘 발굴, 서대리 지석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1 12:23
  • 호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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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기록이야기 31 │ 여창현(남해군 학예연구사)
남해 서대리 1호 지석묘 상석 모습
남해 서대리 1호 지석묘 상석 모습
수습된 유물 모습
수습된 유물 모습

서대리 지석묘는 창선면 서대리 산117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이곳은 속금산(358m)의 지맥이 내려오며 동대만의 동대마을에서 반대편 서대마을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동쪽의 동대만, 서쪽의 남해바다가 바라보이는 지리적 입지가 돋보인다. 현재 지표상에서 육안으로 확인되는 지석묘는 대략 3기 정도이지만 도로 개설 등으로 다수의 지석묘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여름 폭우로 인해 지석묘의 상석이 도로변 아래쪽으로 떨어져 통행에 불편을 주었다. 주민들의 불편과 함께 문화재 훼손도 우려되었기 때문에 긴급 발굴조사를 하게 되었다.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5일간의 긴급조사 결과, 지석묘의 하부 구조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단애면에서 흘러내린 토사더미에서 석촉 4점이 채집되었다. 석촉은 부서진 판석 위에서 내부 흙과 엉켜 있는 흙덩이 속에 박혀 있었다. 대부분의 부장 유물은 유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석묘 단애면 모습
지석묘 단애면 모습

발굴조사된 지석묘는 1호 지석묘로 명명되었다. 매장주체부의 규모는 길이 50㎝, 너비 30㎝, 깊이 54㎝ 정도로 남아 있었다. 무덤의 주인공이 매장된 공간은 석곽(돌덧널)형으로 축조되었고, 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주체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유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수습된 석촉을 통해 청동기 시대 후기에 조성된 지석묘로 볼 수 있다. 서대리, 동대리 경계부에 지석묘 상석이 2개가 더 확인되므로 원래 이 일대에 지석묘가 무리를 지어 분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서대리 지석묘의 주목되는 점은 남해의 양안이 조망되는 고갯마루에 입지한 지석묘의 위치이다. 최근에 발굴조사된 창선 당항리 지석묘와 함께 인근 지역의 사천 이금동 유적이나 늑도 유적 등 도서와 육지에 인접한 지역의 유적과의 비교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지석묘의 축조 시기는 수습된 석촉의 형태로 볼 때, 청동기시대 후기 무렵으로 보인다.

여창현 │ 남해군 학예연구사
여창현 │ 남해군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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