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대로 찢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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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대로 찢을 수 있다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1 12:26
  • 호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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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아내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상에 갓 버무린 김장김치를 내었다. 어제 친구가 김장했다며 보낸 김치에 흰 쌀밥을 싸서 맛있게 먹으며 옛 생각에 잠시 잠겼다.
어린 시절 김장철이면 어머니는 이웃과 더불어 김치를 담그곤 했는데 옆에 붙어서서 보채고 서 있으면 갓 버무린 김치를 찢어 입에 넣어주시고는 "많이 먹으면 저녁에 물켠다" 하셔도 짭조름하며 시원한 맛에 속이 아릴 만큼 먹곤 했다. 어떤 해 김장 날 수육이라도 삶으면 쭉쭉 찢은 김치에 돼지고기를 싸서는 배를 채우며 행복해했는데 지금은 자주 겪을 수 없는 추억의 한쪽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총각 시절 혼자 사는 자취방에 친구라도 찾아와 라면에 찬밥을 말아먹을 때도 꼭 김치를 손으로 찢어 대접했는데 없는 찬에 정성이라도 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가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얹어주던 김치맛을 잘 알고 있다. 똑같은 김치라도 손을 더럽히는 약간의 수고를 더한 결대로 찢은 김치가 한 맛 더 있는 것은 순리의 방향으로 조금의 노력이 더해 만드는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위와 칼로 김치를 썰어두고 덜어 먹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파전이나 김치를 가위로 자르면 일정한 크기로 먹기 좋게 만들 수 있고 손에 양념과 기름기를 묻히는 번거로움은 벗어나지만, 왠지 찢어먹을 때의 맛보다 못하다 느끼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
번거로움과 편리함에 밀려 김치를 가위로 자르듯 일상 속 많은 일과 공무들이 획일화되고 틀에 박힌 듯 처리된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나를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손이 조금 귀찮아지는 일들을 만날 때 가위질처럼 매끄러운 처리보다 김치 찢는 정도의 정성과 수고 정도는 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더욱 안전하고 다정한 사회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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