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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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28 15:06
  • 호수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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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어린 시절 여름이 찾아오면 등목을 하거나 멱을 감으며 더위를 식혔고 잠자리에 들 때면 모기장을 치고는 가족이 누워 집안의 보물인 하나뿐인 선풍기를 회전시켜 바람을 맞으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곤 했다.
열대야가 찾아와 견디기 힘들 때는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자기도 했는데 몸부림을 치거나 누군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오고는 정리를 잘못해 모기장 한쪽이 들리면 그새 침투한 모기에 밤새 잠 못 들거나 다음날 모기에 물린 자국에 침을 바르며 가려움을 달래기도 했다. 냉장고가 없어 우물이나 귀한 얼음물에 담갔다가 먹는 수박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그때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래는 간혹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한여름의 필수품인 모기장은 가을이 찾아오면 어머니가 고이 접어 귀하게 농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해 다시 사용했는데 그때는 개인 선풍기와 모기장을 갖는 것이 꿈이었고 성인이 돼 돈을 벌기 시작하면 동생들에게도 꼭 하나씩 사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난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으며 과학 또한 눈부시게 발전해 요즘은 대부분 가정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더위와 추위로 인해 고통받는 환경은 벗어난 듯 느껴진다.
모기장이 사라지며 우리의 행복 또한 커져만 갔는지 의문이 드는 건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름 등목을 해주던 어머니의 정과 한 이불 속에서 잠 못 드는 밤 속삭이던 형제의 속삭임이 더욱 그리운 요즘이다.
에어컨의 시원함은 기계가 뜨거움을 뱉어 만드는 이기심이다. 뜨거움을 분출해 시원함을 만드는 에어컨의 시원함에 젖어 사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행동과 처신 또한 에어컨과 닮아가고 있다 느껴진다. 타인과 사회의 뜨거운 부분을 마주할 때 에어컨 리모컨보다 부채와 등목 바가지를 드는 용기가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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