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품은 삶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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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품은 삶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31 12:00
  • 호수 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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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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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특집 인터뷰 | 가톨릭대학교 김봉군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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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주는 교훈 깨달아야
인류에게 희망 있어
문학박사이자 평론가인 김봉군 가톨릭대 명예교수
문학박사이자 평론가인 김봉군 가톨릭대 명예교수

 코로나19가 상처만 남긴 2020년이 저물어간다. 살림은 팍팍해지고 사람들 간 나누던 온기는 줄어들었다. 새해엔 백신과 치료제가 이 지긋지긋한 거리두기를 끝내고 일상을 돌려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 위기를 극복하면 우리는,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삶,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분열을 치유하고 희망을 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향을 대표하는 석학 김봉군 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만나 고견을 들었다. 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인문학 에세이 룗이 역사를 어찌할 것인가룘를 통해 인류의 평화 공존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고향 사람들, 어머니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수재로 주목 받았던 그는 평생을 교육자로, 학자로 헌신했다. 

 "고향에서 받은 것은 많은데 고향을 위해 한 일이 없어 아쉽다. 하지만 고향과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준 `실천적 사랑`은 평생 교육자로 살면서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는 김봉군 교수. 그가 들려준 삶과 미래에 대한 통찰을 나누고자 한다.
 

세계인류와 우리나라의 미래 담론 제시
 문예바다에서 출간한 룗이 역사를 어찌할 것인가룘는 문명 비판에서 시작해 우리역사의 아픈 생채기와 영광의 족적을 조명한 융합 인문학서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극단으로 분열되어 있다.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고 각자의 편협한 시각으로만 보다보니 극단으로 갈라진 것이다. 난 평생을 진리를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이념, 지역, 학벌로 갈라진 우리 사회가 진리에 관심을 기울여 서로 화합하고 희망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김봉군 교수. 인류 문명사의 거대 담론으로 인류 문명의 흐름을 통찰하는 한편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 조선 왕조 멸망의 원인, 친일파의 진상 등 우리 역사를 돌아보며 분열의 씨앗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고찰한다. 김 교수는 "인류에게는 추구해야 하는 보편성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과 같은 것이다. 좌·우라는 이념의 틀이 아니라 보편성의 기준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리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코로나19 이후 세대를 맞이하는 인류의 과제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큰 재앙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환경을 가꾸지 않고 파괴하면서 코로나19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왜 코로나라는 위기가 왔는지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을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제자들을 위한 헌신적 사랑
 김 교수는 창선면 장포마을에서 태어나 진동초와 창선중, 진주고를 졸업했다. 창선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대학원까지 수석장학금으로 공부한 수재였던 그에게는 삶의 시기마다 버팀목이 되고 길을 비춰준 은사들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국어과(현 국어교육과)에 진학한 후 법학도 전공했지만 그는 권력자의 길이 아닌 교육자의 길을 선택했다.
 학교 졸업 후 성심여고와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며 40년을 교직에 봉사해왔다. 
 김 교수는 "내 삶의 중심은 교육, 학문, 조국이었다"며 "40년간 제자들을 한 번도 꾸짖지 않고 사랑으로 가르쳤다"고 자부했다. 80년 군부독재시절에는 민주화운동으로 경찰서에 잡혀간 제자들의 구명활동을 펼쳐 정부로부터 탄압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이념적 활동이 아니라 제자를 위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제자는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다. 내가 교직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진동초 박찬동 교장선생님과 서울대 김형규, 이탁, 이응백 교수님 등 훌륭한 분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내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만큼 초원장학회에 참여, 도움이 필요한 학생 1만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단순히 장학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너희들도 언젠가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실천적 사랑 몸소 보여주신 어머니
 김 교수는 고향 장포마을이 담긴 빛바랜 사진을 거실에 두고 매일 눈에 담는다. 마을 앞 해변가는 썰물이면 하얀 모래를 드러냈는데 유년시절 밤마다 해변가를 서성거렸던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다.

 김 교수는 "돌이켜 보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어머니(故 강수희 여사)였다. 삼동 동천마을에서 장포로 시집 온 어머니는 그야말로 단단한 사랑덩어리였다. 밥 얻어 먹으러 온 동냥꾼에게도 꼭 밥상을 차려 대접하셨던 분, 이틀을 굶었다는 문둥병 환자에게 아이들 먹일 점심을 고스란히 내어주고 배고프다 투정하는 아들을 혼내시는 분이었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만장이 67개나 들어와서 동네어른들이 보면서 `자네 어머니는 관찰사보다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행동으로 보여준 어머니의 사랑법을 배운 그는 이번 저서에서도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한 다양한 제언을 쏟아냈다. 특히 한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선언과 세계영성교육원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창의적 제안도 들어있다.

 김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이다. "이제 우리는 슬픔의 무덤을 파헤치며 이를 가는 분노의 자식들이 아니라. 광대한 역사의 지평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통일 대한민국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망의 전도사로 나서야 한다. 저주의 언어는 분열과 멸망을 부르고 소망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를 기쁨의 광장에 모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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