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를 만난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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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를 만난 생일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31 12:03
  • 호수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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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귀 자남해군 고현면 포상 출생 / 고현초, 고현중, 진주여고,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 지냄 / 현재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 부장(교육연구관)으로 근무 중.
박 귀 자

남해군 고현면 포상 출생 / 고현초, 고현중, 진주여고,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 지냄 / 현재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 부장(교육연구관)으로 근무 중.

 이른 아침부터 딸들이 부산하더니 조촐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모처럼 네 식구가 식탁에서 마음을 나누고 있을 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타 지역 번호가 떴다. `이 시간에 누굴까, 먼 곳에서 나를 찾다니, 생일축하를 해 주려나` 궁금했지만, 수신을 미루고 출근 채비를 서둘렀다. 집을 나서니 차가운 바람이 코끝에 닿았다. 

 그래도 지난주보다 출근길이 한결 가볍다. 친정나들이를 다녀와 그런지 에너지를 충전하여 스스로에게 축하메시지를 전한다. 막 근무지에 도착했는데 주머니 속 전화가 떨린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A사 직원 B인데요, 생일을 축하합니다."

 내 생일을 어찌 알았나 싶어 의심을 내비치자 이내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C사 고객의 통신서비스 불만이 높습니다. 고객님도 그러시죠?"

 미처 대답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는 거침없이 하이톤이고, 스피드톤이다. 모회사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통신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하는데, 응답자에게는 최신 휴대전화를 무료로 제공한단다. 품질이 우수한 전화기를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통화가 끝나면 배송부서에서 별도 연락을 할 거라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이런 광고 전화에는 관심이 없다며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는데 오늘은 좀 특별하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전화기를 바꿀 절호의 기회다. 수화기를 타고 전해온 품격 있어 보이는 음성이 제대로 내 귀에 꽂힌다. `D사, E폰, 일주일내 배달, 일체 무료`라니 운수 좋은 날이다.

 생일을 맞아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축하선물까지 보내준다니, 저녁에 만날 친구들에게 크게 한 턱 쏘아야겠다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이상하게도 맛이 그리 개운치만은 않다.

 이윽고 저녁 시간,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횟집에 모였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열변을 토한다. 누가 대통령감이고, 서민에게 당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며, 우리가 세계 속으로 뻗어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 구구절절 옳은 말이 오간다. 마치 대통령 선거 후보이거나 대변인이라도 된 양,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힘주어 말한다. 정치 분야에서 시작된 대화가 매운탕과 함께 슬그머니 인생살이 오십 고개로 넘어갈 즈음에 돌발사태가 일어났다. 내 목구멍에 생선가시가 걸려 버렸다. 생일 축하 분위기가 깨어질까 꾹 참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목이 갑갑해지더니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잘 차려진 생일상까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식당에서 먼저 나왔다. 몸에 들어온 가시를 달래가며 주차장 쪽으로 걷는다. 쿵쿵 몇 번을 뛰어보고, 어린왕자가 정성들여서 가꾼 장미도 가시가 있어 예쁜 거라고 억지 위로까지 더해 보지만 그 꽃의 가시와는 딴 판이다. 목 안쪽의 생선가시는 불편하다 못해 이상한 기분까지 들기에 충분하다. 혹 이대로 죽는 건 아닌지.

 가끔 복잡한 곳에 주차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히 할 요량으로 주차 위치를 사진으로 찍어 둔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연유인지 그러지 못했다. 인근 백화점 지하 3층에 차를 세워두고 바삐 약속장소로 갔는데, 돌아와 확인하니 주차해 둔 곳에 내 차가 없다. 불과 두어 시간 전에 내가 직접 주차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신중하지 못하고 서두른 것을 후회해도 방도가 없긴 마찬가지다. 너른 주차장을 돌며 차를 찾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서너 번을 반복하고 나니 온몸이 기진맥진이다. 주차장 바닥에라도 푹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하필이면 생일날 이 무슨 난리람. 

 엘리베이터에서 주차 안내 직원을 만났다. 허겁지겁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이서 30분 을 헤매고 나서야 한 쪽 구석에 얌전히 주차돼 있는 내 차를 본다. 그곳은 쇼핑몰 내 검품직원만 출입이 허락된 공간이란다. 손님은 드나들 수 없는 곳인데, 내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니 한심하다. 수십 년 동안 이 주차장을 이용해 왔는데 오늘같이 난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순한 잘못치곤 너무나 큰 실수를 한 셈이다.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생일이어서 특별한 대우나 이벤트를 기대했을까. 목구멍의 이물감으로 잠 못 이루는 시간이다. 이 한밤에 크게 한 입 쌈밥을 만들어 삼켜본다. 가시까지 꿀꺽 넘어가길 소원해보지만 민간요법도 효험이 없다. 목에 걸린 가시는 내일 병원신세를 져야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정뉴스를 보니 이른 아침부터 연달아 걸려왔던 설문 전화는 개인정보를 긁어가는 사기수법이라고 떠들썩하다. 스마트폰 단말기를 무료로 보내주겠다던 친절한 통화음성은 며칠 귓전을 맴돌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은 내 어리석음도 싸악 씻겨가길 바랄 뿐이다. 아무래도 멋지게 폼 내려 했던 생일잔치의 대가를 오래 치러야 될 성 싶다. 

 밤이 늦도록 생일일기를 쓴다. 나에게 생일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날만큼은 있는 이대로의 모습으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축복의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이름까지 붙여 -회갑, 칠순, 팔순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더라도, 평년의 생일쯤이야 그리 유별한 일이 아니건만, 올해는 어쩐지 다르다. 

 온통 머피소식뿐인 연말, 생일을 맞아 여러 다짐이 오버랩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본다. 손을 살짝 들어 오래간만에 벽 너머까지 상상한다. 바쁜 틈을 비집고 달려온 머피들까지 새롭다. 생각할수록 `생일이란` 우리 삶 속에서 잠시라도 틈을 내어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 보라고 있는 날`인가 싶다. 머피를 만나 생각이 많은 날, 오늘따라 하루가 왜 이렇게 긴 것인지~. 

※머피의 법칙: 하려는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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