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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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12.31 12:06
  • 호수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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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이사를 하려 짐을 챙기며 정작 필요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고 여러 개 발견돼 놀랐고 일 년에 한 번도 쓰이지 않을 물건들을 사두고는 잊고 있음에 놀랐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신발장 속의 다양한 신발과 옷장 속의 수많은 옷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정작 짐을 꾸리려 보니 이렇게 많은 옷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의구심마저 들었다. 

 가구와 물건들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처리하고 남는 것들은 버렸지만 선택을 기다리며 방안 가득 널브러져 있는 옷들은 지난날의 사치와 허영심을 꾸짖는듯하여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살이 쪄 맞지 않은 옷 중 깨끗한 것은 동생들에게 주고 새 옷장만을 절제하리라 다짐하며 이사를 마무리했다. 

 이삿짐을 풀고 옷을 정리하는데 어린 시절은 계절마다 한 두벌의 옷을 바꿔 입으며 살아있음이 떠올랐다. 의류의 소재도 나일론이거나 면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질기고 튼튼해 형의 옷을 물려받아 입기도 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요즘 고급소재의 고가 옷들을 누구나 두어 벌은 가지고 있는데 멋이 나고 따뜻하기는 해도 관리가 어렵다. 

 캐시미어나 울 소재들은 착용 후 반나절만 지나면 주름이 잡히거나 마찰에 보풀이 발생해 모임 외에는 입기가 부담스러운데 꼭 요즘 우리들의 인품같이 느껴진다. 질기다는 이유로 나일론을 입든 그 시절 우리는 투박하여도 웬만한 일에는 서로를 이해하며 잘 찢어지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했지만, 많이 배우고 잘사는 현대의 우리는 꼭 캐시미어처럼 품위는 있으나 서로에게 조그만 일로 쉽게 지치며 상처받고는 스스로만 우아하다 외치는 것 같다. 

 관리 어려운 캐시미어를 입어도 입은 이의 마음은 나일론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질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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