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맛본 묵향, 생기 넘치는 문인화로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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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맛본 묵향, 생기 넘치는 문인화로 꽃피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1.07 11:14
  • 호수 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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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연죽리 임채욱 작가의 꿈 이야기
"올핸 개인전 열어 사람들 위로하고 싶다"
서면 연죽리 자택 작업실에서 만난 임채욱 작가.
서면 연죽리 자택 작업실에서 만난 임채욱 작가.
임채욱 작가의 문인화 한 점. 늘 푸른 소나무의 한결같음으로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낼 것이라는 다짐이 담긴 듯하다.
임채욱 작가의 문인화 한 점. 늘 푸른 소나무의 한결같음으로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낼 것이라는 다짐이 담긴 듯하다.

 지광(池廣) 임채욱(71) 작가는 서면 연죽리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터 잡고 살고 있는 남해 토박이다. 칠순을 넘긴 노(老) 작가지만 그의 문인화는 생기가 넘치고 감성이 살아있다. 70년 인생의 담담함도 담겨 있다. 

 임 작가가 문인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놀랍게도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63세 무렵. 붓을 든 지 8년이 채 안 되는 늦깎이작가다. 그럼에도 그는 대한민국예술협회, (사)대한민국국제기로미술협회, 대한민국향토미술협회, 한국전통서예협회, (사)한국미술협회 등 5개 미술협회의 초대작가로, 초대작가상·추천작가상을 비롯해 5관상, 3관상, 특별상, 특·입선 등 크고 작은 각종 상을 두루 수상했다. 5관상은 문인화의 화제인 사군자(매화·난초·국화·대나무)에 소나무를 더한 작품 5점을 출품해 모두 입상하는 경우를 일컫는 것으로 작가에게는 큰 명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상한 작품만 50점이 넘는다. 

 그외에 광양문화역사관 먹그림 회원전, 남해군 서도회 회원전 등에도 참가했다. 서면 종합복지관에 송학도와 매화도 2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5개 미술협회 초대작가로 활동
 임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서면 대서초등학교 대표로 군내 사생실기대회에 참가해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중고생 시절까지 개천예술제 등 각종 대회에 출전하며 상을 휩쓸곤 했다. 그렇게 화가의 꿈을 키워갔고 서울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에 특기장학생으로 합격해 그 꿈에 한층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입학을 포기하고 그만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상업미술을 하며 40여 년을 가족생계와 자녀양육에 힘쓰고 살았다. 그때 운영한 업체가 서라벌광고사, 종합광고 동우사다. 

 "어느 날 우연히 먼지가 앉은 제 미술도구를 발견했어요. 그걸 본 순간 일찌감치 접었던 화가의 꿈이 되살아났고 다시 붓을 잡게 되었지요." 임 작가는 당시 63세였고,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자 이제는 제대로 배워야겠다 싶어 전남 광양의 역사문화관을 찾아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묵향에 빠져 문인화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그림은 쉽게 말해 `먹그림`이라고, 한국화예요. 문인화는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는 짬짬이 그리던 그림이지요. 그중에 사군자도 포함돼요." 청소년기까지는 서양화(유화)를 했지만 다시 붓을 잡은 지금은 한국화를 주로 그린다. 

 그렇다고 서양화를 아예 그만둔 건 아니다. "대개는 모란, 연꽃, 거제도 소매물도, 계곡, 돌담, 조롱박 등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고향의 토속적 풍경을 살린 유화를 지금도 그립니다."

 "학력도 미술계 인맥도 변변치 않은 탓에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했더니 어느새 5개 협회 초대작가가 돼 있더군요." 그렇게 그는 평생 간직해온 화가의 꿈을 이뤘다. 

늦깎이작가의 새해 새 소망
 그는 현재 남해서도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미술협회 남해미협 회원이기도 하다. 월요일에는 남해문화원에서 문인화반 사군자 지도강사로 강의를 한다. 남해서도회는 실내체육관 2층 로비에서 1년에 한 번 정기전을 한다. 지난해 정기전은 코로나19로 조용히 치렀지만 회원들 작품이 80여 점이나 전시됐다. 

 올해는 곧 개장하는 `스페이스 미조` 전시장에서 미술협회 회원들의 작품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임 작가는 여기에 100호짜리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지난해 그는 마음에 품은 소망 한 가지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을 여는 것이었다. 작가로서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이라면 마땅히 가질 만한 소망이라 하겠다. 

 "작년에 칠순기념으로 개인전을 하려고 했어요.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했을 겁니다. 그런데 개인전이란 게 내 작품을 다른 이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그냥 와서 박수 치고 갈 일이 아니니까요." 

 아직도 감염병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조심스럽게 전시회를 해볼 생각이다. "한 점 한 점 신명을 다해 그린 것들이라 그냥 묵히기엔 아쉽지요. 다만 내 그림들이 보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신축년 새해, 그가 품어보는 새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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