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의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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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의 여름휴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1.07 11:38
  • 호수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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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학회 `제5회 군민과 함께하는 남해문학공모전`
정 성 화남해읍
정 성 화
남해읍

수필 | 일반부 최우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올여름 휴가만큼은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다. 진즉에 요것조것 하고 싶었던 꺼리는 정해 두었다. 바쁜 일을 정리하고 난 8월말 즈음 드디어 설레던 나의 여름휴가는 예정에 없었던 아들의 복학 이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어미 마음이 다 그렇듯이 언제부터인가 자식을 위한 시간을 제하고 난 후 나의 고른 숨쉬기가 가능했다. 먼저 작은놈 이삿짐 정리와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전역한 아들이 기숙사 생활을 마다하고, 코로나 상황도 불확실하기에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멀리서 혼자 생활할 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챙기다 보니 어느새 물건이 한방 가득했다. 

 남해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고 새벽녘에야 들어온 아들은 차에 다 싣고 가긴 무리라며 준비한 물품을 하나둘씩 추려냈다.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쿨한 척 숨기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쉬지 않고 꼬박 달려도 네 시간 넘게 걸리는 장거리였다. 

 첫 휴게소를 통과하고 한참을 달리다가 화장실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뒷자리에 누워 꼼짝 않는 아들을 불렀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아들의 몸을 흔들고자 짧은 팔을 뒤로 뻗었다. 뜨거운 아들의 팔이 내 손에 닿는 순간부터 나의 소설 같은 휴가는 시작되었다. 아들의 몸이 불덩이였다. 순간 코로나 19?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열이 난다는 이유만으로도 덜컹 겁이 났다. 

 아들과 나의 일상을 되짚어 보았다. 같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그다지 없었지만 자취방으로 짐을 옮기기 시작한 오늘 아침부터의 동행이 문제였다. 걱정 반, 염려 반으로 원룸에 도착했다. 5평 남짓한 좁은 방은 청년의 꿈을 이루기엔 부족해 보였다. 또 다른 걱정이 앞서 엄마의 마음조차 허락할 수 없는 너무 알뜰한 공간이었다. 

 아들의 거처를 쓸고 닦아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하루가 훌쩍 가고 있었다. 힘없이 드러누운 아들을 위해 죽을 주문해서 먹였다. 일요일이고 병원에도 갈 수 없었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가까운 편의점에서 공수한 타이레놀 한 정도 긴급 처방했다. 

 아들의 뜨겁던 몸이 냉랭해지기까지는 사오십 분 걸렸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나는 아들의 상태는 세계를 들썩이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이었다. 설마 내일부터 시작되는 나의 휴가가…. 코로나 절대거부라는 절절함으로 삼십년 같은 사흘을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약 기운은 대략 여섯 시간 정도 효능이 있는 것 같았다. 열두 시간을 꼬박 같은 공간에서 정리하고 계약 마무리를 하면서도 간간이 증상에 따른 정보검색으로 종종거렸다. 아들은 내내 괜찮다며 엄마 아빠는 집으로 빨리 가라고 했다. 

 홀로서기를 하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그래도 덜 서운했을 터였다. 만약 아들이 코로나 19라면 나도 남편도 냉정해져야 했다. 망설임과 안타까움으로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아들을 홀로 두고 나왔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어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을 놓지 못해 아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아들의 선한 거짓말이 빤히 엿보여 제대로 잠을 청하지도 못하고 하얀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아들에게 가까운 보건소로 가서 검사하라고 주문했다. 아들은 동사무소에 가서 확정일자를 신고하고 보건소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상이 느껴지면 2~3일간 집에서 쉬라는 유의사항이고 뭐고 나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아들이 코로나로 확정되면 나의 근무지 폐쇄는 물론 동선 파악부터 들썩일 남해를 생각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 엄청난 상황을 어찌하나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휴가 첫날부터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그 누구와 나눌 수도 없었고 만약 아들이 양성일 경우 격리될 것이고 나와 남편 또한 선별검사소로 가야 했다. 검사를 받고 나온 아들은 다음날 오전 중에 문자로 알려준다며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도 검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또 울컥했다. 

 전 세계 2685만 명에 한 명이 더 추가될 것 같은 불안함과 걱정이 내 몸을 휘감았다. 살면서 쉽게 던졌던 힘들다 어렵다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차분한 척했던 나의 가슴은 안절부절, 곱절의 지진을 일으켰다. 당장은 `코로나가 아니길` 아들도 우리도 간절함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십년 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사흘째 되는 날, 검사결과 `음성`이라는 문자가 왔다며 아들이 전화를 해왔다. 절절거리던 나의 심장은 한방에 바람을 품어낸 풍선처럼 걱정을 단방에 훅 날렸다. 그제야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장마가 끝난 후, 더웠던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니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고 이불을 감싼 아들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임파선이 약해 곧잘 감기로 고생했다. 하지만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는 말에 걱정스러웠다. 전역 후 사방팔방 자유를 누렸던 아들의 생활 리듬이 무척이나 나에겐 못마땅했다. 

 전역 이후 3개월간 아들의 방심한 시간도, 나름 설렘으로 시작된 나의 휴가 시작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나와 이웃을 위해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게 만들었고 불쑥 찾아와 언제 사라질 줄 모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내 삶에, 아니 우리 삶에 쉼표를 찍어주었다. 매일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몇 명인지에만 관심을 가졌던 나에게 좋은 습관, 적절한 관계,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용기와 함께 중년 여인 인생그림을 알맞게 수정하게 만든 귀한 시간이었다.  

 혹독한 휴가를 보내고 나니 끝나지 않는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청정 보물섬이라지만 하면서 보낸 하루하루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완치된 사람은 그로 끝난 줄만 알았다. 끝나지 않은 고통이 있으리라고 조금의 관심도 배려하지 않아 부끄러웠다. 

 오늘 유난히 맑은 창공처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몹쓸 바이러스 감옥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심장 떨리는 간절함으로 두근두근 보낸 2020년 나의 여름휴가. 근무지 폐쇄 조치 없이 다행스럽게 보냈음을 신고하며 코로나19 없는 휴가를 기다려 본다.                                        
 - 보물섬은 코로나19 멋지게 극복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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