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자체가 소중한 기록물… 다른 지역 기록연구사들 부러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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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자체가 소중한 기록물… 다른 지역 기록연구사들 부러워해"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2.04 10:38
  • 호수 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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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기록이야기` 기록자들을 만나다
| 인터뷰 | 이미숙 기록연구사·여창현 학예연구사

본지에 1년 6개월간
30회 게재
공공기록물·문화유산
골고루 소개

기록은 힘이 세다. 지나간 시간은 과거이지만 기록된 과거는 역사가 되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작용하고 길잡이가 돼준다. 본지는 `보물섬 사람들의 기억, 박물과 기록으로 만나다`라는 표제로 2019년 7월 `지문채취기`부터 2020년 12월 `청동기시대 창선 서대리 지석묘`까지 30회에 걸쳐 남해군 기록이야기를 연재해왔다. 1년 반 동안 남해의 기억을 기록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쓰기의 괴로움을 감내하며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이뤄낸 남해군청 이미숙 기록연구사와 여창현 학예연구사를 만나 그간 못 다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이미숙(왼쪽) 기록연구사·여창현(오른쪽) 학예연구사. 남해군 기록이야기는 1년 6개월간 본지에서 30회 연재됐다.
이미숙(왼쪽) 기록연구사·여창현(오른쪽) 학예연구사. 남해군 기록이야기는 1년 6개월간 본지에서 30회 연재됐다.

남해군과 관련된 각종 기록물과 문화재 등에 관한 글을 약 1년 반 동안 연재해주셨다. 두 분은 주로 어떤 분야를 소개했나 = 이미숙 기록연구사(이하 이) : 우리 군청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을 소개했다. 종이문서 같은 비전자기록물, 군청이나 읍 행사들의 변화과정이 드러나는 사진기록물, 상장, 수치(깃발), 외국의 자매결연 도시와 주고받은 선물 같은 행정박물 등을 소개했다. 

 여창현 학예연구사(이하 여) : 문화재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군민이 잘 알고 있는 문화유적을 선사시대부터 현재와 가까운 역사까지 시대별로 소개했다. 청동기 지석묘, 구석기 시대 유물, 대장경 판각지 등 특정 유적과 그 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소개하다 보니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군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고 나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연재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이: 남해대교와 새로운 제2남해대교인 노량대교가 지어지던 때를 비교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옛날 남해대교 사진을 찾았다(10회). 박정희 대통령이 왔을 때의 사진과 건설과정의 사진들을 확인하면서 지금 노량대교의 건설과정을 누군가 기록했을까 궁금해졌다. 노량대교가 거의 완성될 무렵 지금은 은퇴한 사무관 한 분이 주말마다 다리를 오가면서 찍어놓았음을 알게 됐다. 마침 사무관님도 내가 사진을 찾는다는 걸 아시고 자료를 제공해준 덕에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비교하며 소개할 수 있었다. 

 여 : 최대·최고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일 오래된 시기의 유물과 유적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구석기 시대 석영재 몸돌석기인데 아주 작은 것으로 1만년 전 시기의 유물임을 알 수 있었다(11회). 이 유물이 과연 어디 있을까, 채집은 됐는데 누가 들고 갔을까 궁금했다. 확인 끝에 유배문학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화재 위원들도 만났는데 그들 중 한 분이 경남 문화재 담당자 시절 그걸 찾아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분에게 조사 내용과 발굴 과정을 직접 듣고 더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역사 기록자로서 기록의 의미라면 = 이 : 공공물이건 민간물이건 기록물과 문화유산은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고 사회적 기억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으고 쌓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보고 이렇게 살았구나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길잡이가 된다고 본다. 

 여 : 내가 소개하는 문화재, 문화유물은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자 그 시대의 정체성이다. 그 흔적과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 우리도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공적으로 남기는 기록이나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다 글을 어렵게 쓴 경우도 있다. 높은 가치의 문화유산을 문턱을 낮춰서 보여주는 게 우리 역할이다. 

연재하면서 느낀 보람이나 성과라면 = 이 : 남해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글을 보고 있더라. 영역을 더 넓혀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경남기록원에서 민간기록물에 관해 우리 사례를 소개해줄 것을 요청했고, 지난달 26일 여창현 학예사가 민간 아카이브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우리가 한 연재 사례를 본 경남 내 다른 기록연구사들이 경남의 기록이야기를 하려고 경남권 일간지와 접촉했다고 한다. 남해에서는 어떻게 길게 할 수 있었는지 묻더라. 혼자 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협업이었기에 분야를 넓히고 다양한 내용을 소개했다. 그에 대한 메아리도 들려오니 자부심이 생긴다. 

 여 : 상주초등학교 선생님이 기록이야기 연재를 보고 학생들에게 알리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마침 상주초 운동장 공사 중에 포성 일부도 확인하게 되면서 살아있는 역사교육, 문화재 교육이 이뤄졌다. 이런 경우 교과서에서 문화유산을 접하는 것하고는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연재 글을 영상과 함께 교재로 활용하니 학생들이 공감하고 좋아했다. 문화관광해설사들도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이야깃거리가 확장돼서 좋았다고 한다. 몸돌석기 같은 경우는 관광안내지도에도 실리더라. 
 
앞으로의 계획은 = 이: 앞으로도 남해군 기록이야기를 2주에 한 번씩 연재하려고 한다. 나중에 모으면 이 자체로 가치 있는 기록유산이 될 것이다. 나아가 어르신들로부터 민간기록물을 기증받는 작업과 함께 우리 지역의 개인생활사를 기록하고 소개하고 싶다. 또 우리 원고만으로도 소소한 결과물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00회 정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여 : 최대한 남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려고 한다. 우선은 새롭게 발굴조사된 내용을 군민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또 무형의 문화유산도 많은데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내 수준에 맞게 정리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유물이나 유적도 있지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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