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남해로 마음 보내실 분, 다 태웠으면 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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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남해로 마음 보내실 분, 다 태웠으면 오~라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2.04 10:54
  • 호수 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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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남해읍행정복지센터 앞 버스정류소를 지나게 되는데 머리에 서리가 내린 어르신들과 염색한 머리로 젊음을 알리는 학생들이 많다.

 코로나19는 물러나지 않아도 어르신들은 오일장에 맞춰 설대목 준비에 한창이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에 빠져들 듯 휴대폰과 눈마춤이고, 어르신들은 서로 장 본 품목들, 설날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신다. 세월따라 쪼그라든 몸에 비해 커다란 장바구니는 너무 커 보이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품은 것이라 지푸라기 마냥 가볍다.

 "멀 그리 많이 샀던고?"

 "쓰대랑 모린메기 좀 샀제. 우리 큰아들이랑 막냉이가 그리 모린괴기를 좋아헌다 아인가."

 "코로난가, 코난인가. 문~디 거튼기 있어 오도가도 몬허는디 머더로 그리 많이 샀던고. 우리 매느리는 이번 설에 몬온다꼬 볼시로 연락이 왔던디."

 "우리도 다 오지는 몬허고, 아들만 댕기가끼라고 연락이 와서 올라갈 때 손에 좀 잽히조야제 싶어서. 그리 그 코로나가 어여 없어져얄낀데, 이산가족이 따로 없어여."

 "저게 내 버스온다. 성님, 설 잘 쇠고 건강하시다."

 "으, 그리. 동숭도 설 잘 쇠게."

 집에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명절에도 고향에 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못만나는 부모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이카 시대에 살고 있어서 버스를 타려면 일부러 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내가 어릴 땐 버스를 타고 많이 이동했다. 겨울에는 추운 줄도 모르고 무논에서 썰매를 타고, 동네뒷산을 뛰어다니고, 바람부는 날은 연날리기 삼매경에 빠졌다. 해가 지면 웃풍이 드센 흙집에서 잠이 들어 감기는 친구처럼 달고 다녔다. 콧물이 흐르면 옷소매에다 문질러 닦아 소매는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어느 집 아이 할 것 없이 손등은 터서 빨갰다. 실컷 놀고 들어온 겨울밤이면 아빠는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세숫대야에 손을 불려 뽀드득 뽀드득 씻기고는 차례차례 바세린을 발라주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겨울바람이 이겨 먹던 어린 시절이었다.

 콧물과 기침이 심상찮으면 엄마는 하나는 업고 양손에 아이들 하나씩 잡고, 완행버스를 타고 진주시내 소아과로 갔다. 감기가 심해진 언니가 수액을 맞는 동안 입원온돌방에서 엄마는 막냇동생 기저귀도 갈고 젖도 먹였다. 남해로 돌아 올 때도 버스를 탔는데, 무임승차한 추억소환.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우리에게 엄마는 "저 끄트리에 남해뻐스 알제? 엄마가 표 타서 가낀께 둘이 가서 자리 잡아라이."

 미취학아동은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었으나, 아이들을 많이 낳은 엄마는 여럿을 데리고 버스를 탈 때는 좌석에 앉아가기 위해 버스표를 하나 더 샀다.

 언니와 나는 이모가 사준 똑같은 체크무늬의 모직 외투를 입고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가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가 올 거라는 말도 못하고, 버스에 있던 동네아주머니를 따라 남해까지 도착했다. 그 시각, 엄마는 표를 사고 와보니 아이들도 없고, 버스도 없고, 엄마야~ 싶었는데, 주변에 있던 분들에게 수소문하니 쌍둥이 같은 애들이 남해버스를 타고 떠났다는 거. 그 와중에 엄마는 매표소로 다시 돌아가서 구입한 표는 물리고 왔다는 사실. 언니와 나는 놀래지도 않고 외출할 때마다 엄마가 데리고 갔던 시장통 어묵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는 추억. 놀란 간은 콩알만 해졌는데, 발은 매표소로 향했다던 엄마의 변명. 가난한 우리집의 슬픈 농담이다. 

 지난해와 올해, 억지조차 못 부리고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시골집을 홀로 지킨 어머니나 아버지의 집은 드나드는 발길조차 없어 더 고요해졌다. 북적이는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고향을 찾아 변하는 산천도 마음에 담고, 얼마 전 생긴 뚜벅이 버스타고 어릴 땐 몰랐던 여행지도 구경하면 좋겠다. 그나저나 우리 엄마도 옥상 빨래줄에 서대랑 가자미 말려놓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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